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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와 공간의 정치학
2014. 02.19(수) 10:15확대축소
“공동세계가 공동의 집합장소를 제공할지라도, 모이는 사람들의 위치는 상이하다. 두 사람의 위치가 다르듯 한 사람의 위치와 다른 사람의 위치는 일치할 수 없다. 타자에 의해 보여지고 들려진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은 각자 다른 입장에서 보고 듣기 때문이다. 이것이 공적 삶의 의미이다. 공동세계는 오직 이 세계의 관점들의 다양성 속에서만 실존한다.”(한나 아렌트)
공공영역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규정은 이 공간이 다양한 관점과 문화적·공간적 이질성과 차이로 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집합적 경험이라 하더라도 개개인의 기억이 다르고, 보존과 계승·승화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감각이 다르고, 이 집단의 기억을 공간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 기억을 표현하는 과정은 긴장과 대립, 갈등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이 기억의 재현 혹은 표현에 대한 논쟁은 구 도청 별관 보존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고 최근 5·18민주광장 조성방안을 둘러싸고도 또 한 차례 작은 긴장이 재현됐다.
2012년 6월 당초 잔디를 심는 구상으로 출발한 5·18민주광장 조성방안은 동구관내 지역주민 공청회, 상가번영회·5·18단체·시의원·시의회 상임위 등 24회의 의견 수렴을 거치며 지난해 9월 최종안이 확정됐다. 최종안은 ‘5·18당시 분수대 주변 시민과 시민의 함성 형성화’, ‘무등산과 시조인 비둘기 등 디자인’, ‘분수대 주변 실개천 설치, 소공원 조성’, ‘시민교류의 장으로 활용한 박석마당’ 조성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4일 ‘5·18민주광장 조성 관련 해법’을 주제로 광주시의회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이견이 나왔다. 임낙평 광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이 “‘바닥을 황토로 하고, 광장 주변에 고인돌을 설치해 5월 정신을 상징화하자’는 5·18기념관(민주평화인권기념관) 전시 콘텐츠 연구 용역을 맡은 황지우 시인의 지난해 11월 구상을 광주시가 검토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광주시는 또 다른 제안이 튀어 나오자 잔뜩 긴장하는 모양새다. 구 도청 별관의 기억이 생생한 광주시로서는 받아넘기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광주시는 개관의 시급성과 의견수렵 과정을 들어 원안대로 하되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렇다고 개관 시급성이 도청앞 광장이 갖는 ‘메카’로서의 상징성과 공공영역이 갖는 본질적 특성인 ‘다양성’을 넘어설 수는 없고 의견수렴 즉 절차적 정당성이 방패가 돼서도 안된다.
우선 “5월을 불멸의 상징으로 활용할 수 있고, 5·18민주광장을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황지우 시인의 인식은 아름답고 마땅하다. 그는 지난 봄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최종안을 제안한 가을까지는 숱한 여론수렴 과정이 있었다. 전문가로서, 현안을 맡고 있는 책임자로서 지역사회와 함께 고민 했어야 했다. 물론 심미안과 전문성을 겸비한 그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은 광주시도 책임이 크다.
다양성 때문에 더디 가고 돌아가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늦더라도 다양한 의견이 토로되고 수렴돼 지역사회의 최대 공약수를 찾아내는 것이야말, 도청앞 광장이 상징하는 바일 것이다. 진정한 광주정신 아니겠는가.
의견수렴 과정에서 누수에 대한 지하상가 상인들의 우려가 강하게 반영됐다는 뒷이야기는 위험해 보인다. 혹여 이해집단의 입장에 행정이 휘둘린 건 아닌지 하는 기우 때문이다. 현대 건축기술로 대비는 불가능한지, 광주시청 앞 광장을 뒤덮었던 박석이 걷히고 그곳에 잔디가 심어진 생생한 기억에 대한 고민과 검토는 있었는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공간에 대한 기억의 다양성, 재현과 표현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자세가 이 광장의 정신에도 맞다. 긴장과 대립, 갈등을 다양성의 가치로 환원해내는 역량이 요구된다.
5·18 민주광장은 지역민들이 80년 문제를 자발적으로 논의하고 해결을 모색해온 장소의 정치가 행해진 곳이다. 다양한 정치가 모색될 때 지속적이고 공동체적이며 진취적인 자아정체성과 장소정체성을 획득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조덕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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