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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우즈벡을 보려면 빛이 땅에서 하늘로 비친다는 부하라로 가라'

박영진의 세계스케치기행
9)우즈베키스탄 공화국(下)-동방의 에덴
2017. 02.15(수) 00:00확대축소
아르크고성
칼란 미나렛, 사막 여행자들의 등대역활로 징기스칸의 머리를 숙이게 한 탑 유명
숱한 침략으로 붕괴와 재건 반복 '아르크 고성' 도시의 애환을 담고 위풍당당 건재
우즈벡 여인들 하나같이 일짜 눈썹…부귀와 영화 상징으로 화장과 문신을 그려
우즈벡 동서로 주옥같이 박혀있는 오아시스 도시 부하라로 가는 고속도로 양 옆은 끝이 없는 ‘요크욜’ 면화의 길이 이어졌다,
하얀 금이라 부르는 귀한 농산물인지라 목화재배에 농지를 많이 치우치다 보니 식량은 외국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아키메테스 왕조시엔 ‘금의 길’이라 불리었고, 그 후엔 사막과 중국을 잇는 비단 길로 ‘번영과 영광의 길’ 이라 불리웠다. 쨍쨍하게 내려 꽂히는 태양은 너무나도 밝고 맑아 그림자도 남기지도 않을 것 같았다. 다행히 습기없는 마른 대기는 피부에 끈적이지 않아서 그늘만 들어가면 견딜 만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신도심에 자리한 그랜드 부하라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지붕들은 모두 백색의 고층들로 으리으리했다. 예전엔 18세기 부하라로 통하는 관문은 12개에 호수가 20개, 모스크 300개, 167개의 고등기관 등 부하라 칸국의 수도요 성직자의 양성기관이 많아 부의 도시임을 입증하였단다. 외국 관광객중 프랑스인이 많았는데 최근들어 우르겐치에서 직항으로 오는 러시아 관광객이 많다.
중앙아시아의 숨은 명소이자 시간여행의 종착역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수천년 전으로 향하면 바로 빛바랜 도시 부하라를 만난다. 그래서 부하라에선‘ 빛이 땅에서 하늘로 비친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중앙아시아 최대의 이슬람 성지로 도심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시내를 걷다보면 지붕 없는 박물관과 천년된 성곽 앞에선 동네꼬마들이 공을 차며 놀고, 동그란 카라쿨 모자를 쓴 아저씨들이 자전거를 타고 모스크 앞을 지난다.
발길 닿는 곳이 유적이고 눈에 띄는 모든 게 유물이다, 2500년 동안 자리를 옮기지 않은 채 사막의 모래 속에서 차곡차곡 덧 씌어 졌다. 당나라 때 이곳을 방문한 현장스님은 1촌 7백리의 크기에 동서는 넓고 남북이 좁은 장엄한 나라 ‘안국’으로 묘사했다. 고선지와 함께 당나라 변장이 되어 고선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안록산의 고향이기도 하다. 행상들의 숙소였던 라비하우스는 대형 우물을 낀 채 여행자들의 휴식처가 되었으며 지붕이 둥근 옛 건물들에는 전통시장이 들어섰다. 옛시장은 ‘타키’ 라고 부르는데 낙타가 드나들 수 있도록 사람 키의 두 배가 넘는 크기의 대문으로 만들어졌다. 오전 한 때 장이서는 금시장 ‘자르가른’ 이나 카펫시장 ‘압들라흔’ 역시 재미있는 구경거리이다.
아르크 고성
아르크는 ‘요새’란 뜻으로 9세기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성이며 핑크빛 사암으로 흙벽이 인상적이다. 숱한 침략으로 붕괴와 재건이 반복된 성으로 도시의 애환을 가득 담고 위풍당당 하게 서 있다. 성문 앞은 소통의 장소도 되고, 왕은 높은 그늘 집에서 시민들을 접견도 하고 죄인들의 처형장이기도 했다, 성문 앞엔 높다란 기둥이 서 있는데 남자가 죽으면 흰 천에 말꼬리를 달고, 여자가 죽으면 손바닥 모양을 걸어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가며 성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만난 건물은 금요 사원, 이슬람은 금요일이 일요일이다.
성 내부는 현재 박물관으로 변해 옛 생활이 담긴 유물들을 의·식·주로 나뉘어 전시해 놨고, 마지막 칸이 사용했던 그릇들과 사진, 의복 등이 정갈하게 전시돼 그 때의 생활상을 살피는데 많이 유익했다.
사진 시계방향 ▲부하라의 라비하우스 ▲초르미르 노 ▲파프리카요리 가지찜 ▲리보쉬카 주식인 빵 ▲아야스까라

초르미르노 사원
부하라의 동쪽 마을, 일명 죽음의 도시 한 가운데 위치한 초르미르노는 4개의 탑이 특징이다. 예전 메드레스(신학교)를 지키는 문지기들의 방이었는데, 지금은 사원과 박물관으로 이용된다. 옆은 많은 성인들의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얼굴을 모두 메카쪽으로 향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여기선 동그란 ‘리보쉬카’란 빵이 유명한데 식당에서 밥처럼 나온다. 맛이 담백하고 질리지 않고 값이 싸서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쟁반크기 1개 500원) 서민들은 양고기와 양파가 섞인 ‘쉬르파’를 주식으로 먹는다. 고풍스런 주전자 '사모바르'로 차를 따르고, 카펫 위에서 차마시며 느긋하게 즐긴다. 열차를 타도 카펫이 깔려 있다. 그래서 ‘진정한 우즈벡을 보려면 부하라로 가라! 라고 했다지.
징기스칸의 모자를 벗긴 칼란 미나렛
부하라의 상징으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높은 미나레트이다. ‘칼란’이란 타직어로 크다는 뜻 이름에 걸맞게 높이가 46m에 이른다. 그래서 부하라의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부하라의 상징물이다. 부하라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탑은 위로 갈수록 좁아드는 원통형으로 탑의 벽면은 14층으로 나누어 여러 가지 벽돌을 다르게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장식했다. 14는 주변 도시들의 수라고 한다. 벽돌들은 햇빛에 구운 갈색 벽돌이며, 달걀의 흰자와 낙타젓을 반죽하여 쌓았다고 한다. 탑의 안쪽엔 105개의 나선형 계단이 있어 꼭대기까지 연결된다. 꼭대기에선 부하라 시내를 한 눈에 관망할 수 있어 부하라 관광의 백미에 꼽힌다..
미나레트는 사막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중요한 길잡이 였고, 등대역활도 했으며, 사람들에게 하루 5섯차례 예배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역활도 한다
캄캄한 밤엔 꼭대기에 불을 밝혀 대상들은 꿈의 등불이다
이 미나레트는 마을 전체가 붕괴되는 대지진에도 흔들림이 없었고, 파멸을 몰고 다니는 징기스칸이 이 탑을 올려다보다 그만 모자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생각없이 허리를 숙여 모자를 주으려 하던 징기스칸은 "이 탑은 나의 머리를 숙이게 한 멋진 탑이다, 그대로 두어라"라고 해서 오늘날 까지 멋지게 건재한다.
아야스깔라
아야스로 가는 길 양 옆은 드넓은 평원과 끝없는 사막으로 푸른 초원에 끝없는 목화밭이다.
우즈벡 목화밭은 국가사업으로 목화수확 시기는 학생들을 동원한다. 그래서 외부에 공개되는 걸 꺼리기 때문에 사진 찍으면 안된다.
도시락으로 점심을 떼우고 9시간동안 달리고 또 달렸다. 하늘은 티끝 하나없이 푸르고 흰구름은 두둥실, 구름에 그네를 메고 노닐고 싶을 정도로 순수의 빛깔이다.
깔라는 성이란 뜻으로 지금부터 2천년전 아야스란 사람이 세운 성이다, 해발 750m위치한 곳으로 사방이 끝없는 강으로 주위가 천혜의 요새로 이루어져 정복이 어려워 오래 지속되었다.
콩만한 가슴이 한없이 넓어 지는곳, 두 팔을 벌려 상쾌한 공기로 배를 채우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고 싶은 곳이다. 허나 4세기 강물이 마르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흩어지고 성벽 안은 그 어떤 짐승의 흔적도 없고, 세월에 깍힌 성벽만 앙상하게 남았다. 붉은 양털 한 줌 하늘에 불을 지른 듯 활활 불타고 있다. 앞쪽 지평선은 시시각각 다양한 빛으로 바뀐다. 막힌 가슴이 트이며 감격스러움이 밀려 왔다.
유르타 숙소는 이동식 전통가옥으로 한방에 5-6명이 보료를 깔고 잔다. 어제 비가 내려 축축한 실내에 찌든 내음에 갑자기 쌀쌀한 한기까지 몸이 떨린다. 별을 보며 낙타도 타고 즐겼으니, 이런 불편한 쯤 견디리라. 저녁식사는 외국손님들과 다함께 전통 댄스공연도 보고 여흥의 끝엔 댄서와 함께 다같이 춤도 추고 , 모닥불 피우고 노래도 부르고, 감자도 구워 먹고,낭만 가득한 저녁, 이런 호사를 언제 또 누릴까
히바(khiva)
아랍어로 헤이야크 ‘우물이란 뜻’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도시이다. 온통 모스크(사원), 미나레트(첨탑) 마드리사(고등교육기관) 들이고 무덤, 궁전들이니 찬란했던 이슬람문화의 지평선을 어김없이 만들어낸 곳이다. 실크로드는 거대한 돈줄로 동서양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며 인류 역사를 견인했는가 하면 또한 모래 사막과 초원길 여기저기에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묻히고 흩어지며, 이 땅에도 이름없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진한 삶을 살고 있었구나! 발길 닿는 곳곳마다 극치의 기하학으로 신을 찬미한 아라베스크 문양들은 보는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거기에는 또한 신비한 이야기들이 옹기종기 깃들어 있어 상상의 날개를 달아 주기도 하며, 시간을 잃은 도시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즈벡의 풍습들
여성의 날인 3월 8일. 우즈벡인들은 공식적인 행사땐 태양력을 사용하지만 생활속 행사는 이슬람력을 사용한다. 이 날은 여자들이 자기 생일 다음으로 기다리는 날로 평소 여자 친구가 갖고 싶어하는 물건을 무리해서라도 선물한다.
우즈벡 여인들은 가족들을 중시 여긴다. 길거리에 수많은 클럽이나 카페, 공원이 있지만 한 눈 팔지 않고 일찍 귀가하여 가족과 함께 보낸다. 가족 단위의 끈끈한 정과 결속력이 뿌리 내려져 있다.
아르크성 광장 앞에서 만난 현지 아낙들은 하나같이 일자 눈썹을 하고 있었다. 일짜 눈썹은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없으면 화장으로 또는 문신으로 한다,
일자 눈썹은 복이 들어오고 좋은일이 생긴다고 굳게 믿는다. 남자들은 눈옆에 점이 있거나 점위에 털이 솟으면 여인들에게 인기 짱이란다, 가이더의 속삭이는 말로는 밤에 끝내 준다고,
우즈벡 어린이를 눕히는 요람엔 고추를 걸어둔다, 이걸 ‘코르문촉’이라 부른다. 힘든것 버리고 전진하라는 뜻이란다. 아이가 성장하여 지구를 흔들만큼 위대하게 자라라, 어디 우즈벡뿐이랴 지구상 모든 어머니의 소망 아니겠는가,
요람은 천정에 줄을 걸어 매달아 항상 엄마손이 닿게 한다. 요즈음엔 산아정책이 실시되어 4번째 아이가 태어나면 어김없이 벌금이 나온단다.
우즈벡 남자들의 보양식은 말고기이다, 금요일엔 퇴근하고 일찍 귀가해 아내가 차려주는 말고기를 먹고 일주일에 두 번정도 봉사해야 좋은 남편이란다. 문지방엔 말 편자를 걸어 두어 악귀를 물리치는 풍습도 있다. 여기도 공공장소에선 금연구역이다, 어길시엔 벌금형으로 제일 먼저 마당 청소를 해야 한다.
박영진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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