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추가최종편집 4.10(수) 14:43
 
소개 CEO 인사 오시는 길 광고문의 구독신청

슬픈 역사를 지켜본 '야무나 강' 소리 없이 흐르고 말이 없다

박영진의 세계스케치 기행
2)시간의 모래위에 남긴 발자국-북인도여행
2017. 05.24(수) 00:00확대축소
파테프르시크리
순백의 대리석 '타지마할' 태양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빛깔을 달리해
인도 최초 계획 도시 '자이프로' 기백과 신화를 바탕으로 살아 숨쉬는 과거를 회상
이슬람들과 가장 격렬하게 싸운 칫토르 왕국에서 행해진 ‘조하르 의식’…남편들이 보는 앞에서 불구덩이 속으로 목숨 버림
타지마할은 돌 위에 황제의 사랑과 열정을 담은, 네 방향 어느 쪽에서 보아도 완전한 대칭구도의 균형을 취하는 건물이다. 뭄타즈는 14번째 아이를 낳다 죽었는데 이슬람에선 아이를 낳다 죽은 여인을 높이 받들어 모신다. 붉은 사암으로 된 아치형 정문을 통과하면 넓은 뜰에 사이프러스(죽음과 영원한 삶을 상징)나무가 줄지어선 이슬람정원이 펼쳐진다. 길이 300m 일직선 수로 중앙엔 연꽃모양의 수조가 있고, 분수가 시원스레 물을 뿜어내고 있다. 수로에 비친 타지마할의 모습은 공중에 떠 있는 듯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순백의 대리석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빛깔을 달리하여 보는 이들의 넋을 빼놓고 웅장한 건물은 중압감은 커녕 놀랄 정도로 섬세한 조각과 정교한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리석 기둥은 밑에서 올려다 보았을 때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같은 너비로 보이게 하기위해 위로 올라 갈수록 판의 넓이와 새긴 글자를 크게 써넣은 세심함은 단순한 감탄사만으론 부족하다.
내부와 외부는 아시아 인도 중동에서 수입한 보석으로 22개의 지붕은 공사횟수를, 연인원 2만명 동원에 외국 건축가들까지 참여한 위대한 유산이다.
샤자한 왕은 악바르 왕이 사용했던 붉은 색을 버리고 백색대리석으로 수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하지만 타지마할이 완공된 10년 뒤인 아들 아우랑제브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슬픈 역사를 지켜본 야무나 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 모래톱과 마른들판 역시 말이 없다. 아그라와 타지마할 사이엔 인간의 욕망과 사랑이 바람결에 방황하고 있었다.
타고르는“어느날 흘러내린 눈물은 마르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맑고 투명하게 빛나리니 그것이 ‘타지마할’이라네”라고 말했다.
아그라성
야무나 강가에 있는 아그라성은 1566년 무굴 3대황제 악바르가 지은성으로 무굴제국의 옛 수도이다. 높이 20m, 폭2.5㎞로 본래는 요새로 지어진 걸 샤자한이 자신의 재능을 최대로 발휘해 궁전으로 탈바꿈 시켰다.
시킨드는 악바르의 무덤. 현재는 중화학공업단지 도시로 타지마할과 아그라성을 잇는 2km녹지를 제외하면 도시전체 공기가 매우 좋지 않아 향후 200년 이상 지탱하지 못할거라 예측한 인도 문화재관리국은 문화재 안식일을 도입하자니 관광산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아그라 주민이 반대하고 공장을 철거하자니 실업자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단다. 아그라+델리+자이푸르는 인도 관광의 핵심으로 ‘골든 트라이앵글’이라 부른다.
건축왕 샤자한은 30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계승권을 놓고 반란을 일으켜 실패한 뒤, 아버지 제한기르와의 불화 속에서 한 때 소외되기도 했었다. 아버지 제한기르가 죽자 친형제를 죽이고 집권한 권력의 소유자였다. 무굴제국의 정권은 한번도 평화롭게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가 후계자 계승은 장남에 의한 세습제가 아닌 철저한 능력제로 결정되었다. 혈육간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 왕자들은 황제가 죽거나 중병에 걸릴 때를 대비해 개인 군대를 거느렸고, 이는 끝없이 피를 부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파테푸르시크리
무굴제국을 반석위에 올려 놓았던 악바르가 14년 동안 수도로 삼았던 곳이다. 인도 역사를 통털어 대왕을 붙인 왕은 통일 제국의 위업을 세운 ‘아소카(Ashoka)와 무굴제국 ’악바르왕‘ 뿐이다. 악바르는 지배자로써 드물게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으며 동시대인들의 보편적인 이상을 넘어선 뛰어난 지도자로 평가 받고 있단다.
파테의 ‘시칸드라’는 악바르의 종교관을 반영하듯 4개의 입구를 힌두교,이슬람교,기독교를 상징하는 양식으로 만들었다. 악바르의 한가지 고민은 아들이 없었다.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파테’에 에 살던 수피성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결국 그의 예언대로 3명의 아들을 얻게 된다. 악바르는 파테에 빠져 수도까지 옮기지만 물 부족때문에 아그라로 수도를 옮긴다. 그리하여 인도인들의 즉흥성을 설명할 때 예를 들기에 적당한 도시가 되었다. 왕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투박하지만 웅장한 비경을 감추고 있어, 아그라와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악바르가 구자라트 지역 정복을 기념해 세운 개선문인 블랜드마와자의 아치에 새긴 코란의 한구절엔 ‘세상은 다리다, 그 위에 집을 지으려 하지 말고 건너가라.
언덕위에 세워진 요새를 개조한 HILL PORT호텔은 난방은 되지 않았지만 정말 낭만적인 곳이다.
산상위에 마련된 수영장의 에머랄드 물은 수정처럼 맑아 천상을 연상케 했다.
사막위의 물빛은 차갑지만 우리의 가슴을 한없이 뛰게 했다. 추워서 수영은 염두도 못내 아쉬움은 컸지만, 옛 엔틱 가구며, 장식품들이 너무 맘에 들어 정신을 쏙 빼놓았다. 아침 성위에 올라 둘러보니 산이 없이 온통 안개에 덮힌 유채밭 들판이다.
멀리 있는 언덕은 푸른 초원에 배부른 소가 엎드린 모양, 군데군데 서 있는 나무의 그림자와 낮은 건물들이 잊지못할 정겨움을 안겨 주는 곳이다. 사진가분들은 아침을 맞이하는 아낙들과 인심좋은 시골사람들이 빚어내는 풍경에 환호성을 연발한다. 아침 성문을 나서는데 쏟아지는 황금빛 태양에 기념사진을 찍고, 좁은 골목을 내려오며 하룻밤이 아쉬워 다시 뒤돌아보았다.
자이프르 도시
위대한 무사이자 천문학자인 자이씽 2세가 직접 설계하고 계획한 인도 최초 계획도시(1693-1743년 조선 숙종때)로 라지푸트족이 원주민이다.
기백과 신화를 바탕으로 건설된 이곳은 불타는 듯한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하며. 살아 숨쉬는 과거를 만나게 해 준다. 언덕위의 요새, 우아한 궁전, 활기 가득 찬 시장, 쉴새없이 경적을 울리는 북세통 속을 야채를 실은 낙타수레가 육감에 의존해 헤치고 나아간다.
자이프르 최고의 볼거리는 영화감상, 왕의 사원이란 별명을 가진 ‘라즈만디르 게스트하우스’는 주점을 겸하고 있어 편리하기도 하지만, 압도적인 크기의 스크린을 갖추고 있어 인도 최고이다.
하와마할
하와마할

1799년 마하라자 프리탑 싱이 건설한 5개층의 벌집모양을 한 분홍색 사암 건물로, 바람의 궁전 또는 비밀의 궁전이라 부리기도 한다. 천여개의 창문이 다닥다닥 밖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왕실의 여인들에게 도시의 생활상과 흐름을 보여주기 위해 건축된 마음 따뜻한 왕의 선물이다. 왕실 여인들에게 외부세계와 최소한의 소통과 즐거움을 제공했던 곳으로 ‘라지프트 예술의 본보기로 문 뒤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기 좋게 설계되었다.
밖에서 바라볼 때 가운데 가장 큰 창이 왕비것이고 나머지는 후궁들 것이란다. 여인들은 왕이 찾기 쉽도록 자기만의 독특한 문장식을 했다고 한다. 왕이 긴원정으로 출타시 후궁들은 안뜰에서 장사놀이를 하며 왕을 기다렸단다. 하와마할에서 잔타르만타르로 가는길은 화려한 색깔로 물들여진 섬유제품들이 상점 가득가득, 원색의 거리는 눈을 즐겁게 한다.
세계 최대 해시계인 삼라르 얀트라의 높이는 27m. 천체관측시설은 인도보다 우리 세종대왕이 무려 3백년이나 앞섰다니 어깨가 으쓱해진다.
암베르성
쿵쿵 지축을 울리며 코끼리 부대의 위용을 떨치는 암베르성은 마치 살아있는 전설처럼 강대한 성으로, 1727년 카츠츠와하 왕조의 수도로 무굴제국 악바르와의 혼인동맹을 통해 왕국을 반석위에 올려 놓았던 마하라자 만싱이 건설했다. 라지프트 최고의 재력을 자랑하던 카츠츠와하 작품으로, 계단은 두 줄의 기둥과 격자를 달아, 2층 디와니암까지 이어지며 화려하고 아름답다.
치토르가르(CHITTDRGARH)
라자스탄주에서 가장 슬픈 역사를 간직한 절세가인 파드마니 왕비 때문에 멸망한 왕국이다. 우다이푸르에서 자이푸르로 이동중 중간에 위치한 치토르가르는 메와르 왕조의 수도로 현재는 인구가 채 10만도 안되는 작은 도시로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소문난 곳이다.
1303년 700년전(고려때) 메와르 왕조의 라탄씽 왕의 왕비인 파드마니는 너무 아름다워 그 소문이 술탄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술탄은 그녀를 보기위해 라자스탄을 침범하게 되었다. 바람 앞에 촛불이 된 나라의 운명을 위해 무장을 해제하고 맞은편 건물의 거울을 통해서 연못에 비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왕비의 모습에 반해버린 술탄은 라탄 싱 왕을 붙잡아 가서, 자기와 하룻밤을 보내면 왕을 풀어 주겠다고 왕비를 협박한다. 왕비는 엄청나게 많은 가마에 시녀들과 병사들을 숨겨 술탄의 왕국으로 가, 술탄이 방심한 틈을 타 왕을 구출해 돌아온다. 다시 술탄은 5배에 가까운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게 되고, 창문을 통해 왕이 힘겹게 싸운 것을 본 그녀는 불을 피우게 하고 700명의 시녀들과 함께 불속으로 뛰어들어 순결을 지키는 조하르 의식을 치른다.
카츠츠와하 왕조는 무굴과의 정략결혼을 통해 권위를 유지하고 세력을 키웠지만 메와르 왕조는 힌두교의 정체성을 위해 끝까지 싸웠다. 델리를 점령한 이슬람 왕조의 세력 확장으로 비극적 종말을 맞이했으며 1535년 구자라트의 술탄 바하두르샤가 쳐들어 왔을시 1만3천여명 여성과 3만2천명 전사들이 조하르 의식을 치뤘다.
1567년 악바르에게 점령시 가장 참혹했으며, 일반 주민들이 성안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모두 학살 당했다고 전한다.
조하르 의식
칫토르 왕국은 마지막 출정식을 거행할 때 광장에 불을 피우고 출전 무사의 부인들은 결혼식 때 입었던 화려한 옷과 장신구로 치장 후 남편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씩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버렸다. 무사들은 타버린 부인의 재를 얼굴에 바르고 울부짖으며 전쟁터로 돌진,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처절한 각오로 싸웠다고 한다. 이런 ‘조하르 의식’은 이슬람들과 가장 격렬하게 끝까지 싸운 칫토르 왕국에서 행해졌던 순결의식이다.
우다이프르
우다이프르는 풍부한 강수량을 갖춘 남서부에 자리하며, 북서부는 건조한 사막지역이다. 1568년 무굴의 3대 황제 악바르에 패하고 마하라나 우다이씽 2세는 아라발리 산맥에 둘러싸여 적으로부터 방어가 유리한 이곳을 두 번째 수도로 삼았다. 인공호수 피출라와 호숫가의 시티펠리스는 보름달이 뜨는 밤 그림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 연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바라나시 강가처럼 늘어선 가트들로 인도에서 가장 낭만적인 곳으로 신혼여행 1순위이다.
예전엔 엄청난 부를 쌓았다지만 무역이 뭄바이로 옮겨지게 되고 오늘날은 사막에 갇힌 도시가 되어 버렸다.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차 한잔으로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인도의 현재와 과거를 만날 수 있어 더 없이 행복한 곳, 평화로운 기운에 취하며 여행자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마을이었다.박영진





아트PLUS
회사소개 | 회원약관 | 개인보호정책 | 청소년보호정책 | 공지사항 | 제휴문의 | 광고문의 | 기사제보 | 구독신청

제호 : 아트PLUS 등록번호 : 광주 다 - 00259 등록일 : 2013. 9. 18. | 발행.편집인 : 장인균 문의메일 : mdart@mdart.co.kr 웹메일

61234 광주 북구 제봉로 324 (중흥동, SRB빌딩) (주)SRB무등일보 제보 및 문의 062-606-7737(代) 팩스 062-382-0440 Copyright ⓒ mdart.co.kr

본사이트의 게재된 모든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 의 사전 허가없이는 기사와 사진을 무단전재 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