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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살아있는 죽음
2018. 11.29(목) 17:13확대축소
소소한 일상과 즐거움에서 찾아야 하는 삶의 의미



63. 살아있는 죽음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의미

저물어가는 햇볕이 남은 작은 운동장 구석에 모여 바닥을 쪼고 있는 비둘기 몇 마리가 있다. 늦가을의 차가운 공기를 밀쳐내며 힘겹게 날고 있는 나비의 시름을 본다. 공공 화장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호흡을 쫓아와 기다리는 모기의 집념이 있다. 다른 계절이었으면 눈에 띄지 않을 풍경들이다. 겨울은 죽음을 떠올리기 좋은 계절이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사이 그 언저리였을 것으로 기억한다. 티브이에서 했던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라는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 맥버피가 정신병원에서 뇌 절제술을 받은 후 인지적 기능을 상실한 채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는 장면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1977년 개봉된 영화는 다양한 관점에서 감상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사회의 통제에 적응해 살아가는 인간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언급된다. 또는 ‘정신의학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다. 60~70년대 미국보건의료에서 재활보다는 입원을 중심으로 하는 병원체계, 약물치료, 전기충격치료법, 뇌 절제술 등의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의 사용 등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오늘은 현대인의 삶, 특히 한국인의 삶과 연관해서 영화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주인공 맥머피의 일상으로 본 삶

주인공 맥머피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정신질환에 대한 감별을 위해 정신병원에 보내진다. 심신미약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치료감호소로 보내진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는 곧 교도소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당연시하며 병원에서의 생활을 나름 즐기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마저도 통제 당하게 되면서, 병원의 규칙들을 거부하고 거스른다. 예를 들어 그는 쉬는 시간에 들려주는 클래식 음악대신에 월드 시리즈 중계를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병원은 환자들을 위해 고안된 오래된 체계임을 들어 그의 제안을 거부한다. 그의 제안으로 실시된 다수결 투표에서 그의 주장이 회의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찬성이 많았음에도 부결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드러난다. 입원한 환자들이 강제로 입원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입원해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간적인 욕구, 티브이 시청이나 여행, 쇼핑처럼 자유롭고, 즐겁고, 일상적인 활동-를 즐기기를 희망하면서도 병원의 통제와 요구에 순응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용기 없음을 돌아보는 대신에 병원이 치료를 도와준다는 명분이 타당하다고 스스로를 속인다.

최근 특정 직군의 직장인들을 상담하였다. 그들은 의외로 취미나 종교 등의 활동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일이 삶이었다. 일이 취미이고, 관계의 전부이자 인생 전체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신이 하는 일 자체를 즐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일이 자신의 특성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급여가 생활하기에 부족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 일에 아침부터 밤까지, 365일 매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개별성은 모호해진 채 조직과 단체의 업무와 목적만이 살아있었다. 그들의 삶이 노후와 죽음에 다가갈 때, 그들에게 남겨진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구성원의 심리적 건강이 불균형 상태인데 그들이 속한 조직과 그 조직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이상향이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상실하였지만 자신의 삶이 여전히 충만하다고 착각한다.







삶을 촘촘히 채운 ‘공부’의 무게

삶의 의미 상실은 또 다른 지옥

#GDP 3만 불 시대 한국인의 자화상

잠시 그들의 삶을 다른 삶들과 비교해보았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공부하는 청소년, 대학생 그리고 내가 만나는 수많은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들을 생각해보았다. 대학입학이라는 것이 절대명제인 것처럼 고통을 참고 공부하는 초, 중고등학생들이 떠오른다. 그들의 삶을 촘촘히 채운 공부라는 큰 고통의 무게를 가늠해본다. 그들은 다시 대학생이 되고, 자신의 삶을 준비시켜줄 전공공부에는 전혀 흥미와 의미를 가지지 못한 채, 영혼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스크린에 나타난 PPT자료만을 응시하고 있다. GDP 3만 불이 가까워졌다는 이 시대 한국의 모습이다. 시계의 초침처럼 정확하게 맞춰 살아가는 삶에서 정작 인간이 느껴야할 소소한 일상과 즐거움을 흔적을 찾기 어려워졌다. 어쩌면 그런 삶 이외의 삶을 꿈꾸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죽음을 떠올린다는 것은 가장 확실한 치료제가 아닐까?

영화에서 인상 깊은 장면은 수간호사 래치드이다. 그녀는 사회의 질서를 표상한다. 그녀는 단정한 머리와 의복을 지녔다. 병원의 규칙을 엄격히 요구한다. 남자환자가 맥버피가 데려온 여성과 성관계를 한 후에 환자의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겠다고 협박하고, 결국 그 환자가 죄책감과 두려움에 자살을 하지만, 그 사건 이후에 래치드는 자신에 대한 반성은커녕 이전과 동일한 모습으로 병원에 등장한다. 타인의 고통을 경험하고, 한 치도 변화되지 않은 모습이 보여주는 공포감이란! 어찌 보면 각 개인이 지니는 개성의 상실, 삶의 의미의 상실이란 삶은 어찌어찌해야한다는 정당성을 주장하는, 자신을 지극히 선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만든 지옥이 아닐까?

또 다시 아침이 오고, 출근을 위해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 떠밀려 그 어딘가로 가겠지만, 짧은 점심시간과 촉박한 데드라인에 맞춰 바삐 손을 움직이겠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삶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내가 이런 삶을 위해 내가 태어난 것일까라고.







정의석은

‘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대표로 활동 중이다. 아동과 청소년의 심리적인 적응, 학습과 진로 문제 등에 대해 현장에서상담을 해오고 있다. 청년들을 위한 무료집단상담을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국내최초로 진행했고 ‘미래학습상담센터’를 비롯해 교육청 컨설팅장학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 상담심리문제에 참여하고 있다.

backdoor2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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