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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인의 반란자와 러시아 미술
2018. 12.12(수) 17:28확대축소
삶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예술가의 책무



사진설명= 이동파 화가들 크람스코이·레핀·수리코프

크람스코이 작 ‘황야의 그리스도’

레핀 작 ‘볼가강의 배를 그는 사람들’

레핀 작 ‘파멜 프레차코프’ 초상화







64. 14인의 반란자와 러시아 미술



#‘이동파’의 등장

러시아 미술은 아주 특별한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이전과 이후가 나눠진다. 이 사건이 그 만큼 큰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바로 14인의 반란자라는 이름으로 모인 화가들이 ‘이동파’를 결성한 사건이다. 이동파는 말 그대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면서 그림전시회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말하는 것으로 1870년에 결성되었는데 1923년 마지막 전시회까지 무려 53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모임의 탄생과 그 배경을 하나의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 두 가지 일이 미술사에서 보기 드문 특별한 의미 때문이다.

이동파가 탄생하기 몇 년 전인 1863년 14명의 학생들이 자신 스스로를 ‘14인의 반란자’라 부르며 러시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를 집단으로 자퇴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것도 바로 졸업 직전에 말이다. 이쯤 되면 그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들을 겁나게 배짱 좋은 젊은이들이라고 할 만하다. 사건의 발단은 학교에서 내 준 졸업 작품의 주제였는데, 학교에서 졸업생에게 일괄적으로 차르 알렉산드르 2세가 1861년에 선포한 러시아의 농노 해방에 관한 그림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원하는 것은 누가 봐도 차르의 위대함을 찬양하라는 뜻이었다. 크람스코이를 비롯한 14 명의 학생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주제 선정의 자유를 주장했으나 학교 측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뛰어난 실력만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까지 남달랐던 학생들은 학교를 박차고 나와서 그림 작업과 생활을 함께 하는 공동체 만들고 보수적이고 귀족적인 취향의 미술 대신 민중의 삶에 다가가는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이를 계기로 1870년에 러시아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없는 이동파 미술이 시작되었다. 마을에서 마을로 직접 찾아다니면서 농민과 노동자에게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연 것이다.



#반란의 주동자 이반 크람스코이

14인의 반란자들 중심에 선 화가가 이반 크람스코이(1837-1887)다. 크람스코이는 지방의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서 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면서 최고의 미술 아카데미의 졸업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반란’을 주동했다. 그는 화가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예술가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책무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보장된 기득권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는 뛰어난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실천하고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크람스코이에게 미술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특수한 몇 사람이나 계층을 위해서 현실을 이상화하거나 아름답게 그리면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고 ‘삶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서 찾았다. 눈앞의 현실, 미화되지 않은 삶 그 자체를 표현하기 위한 고뇌가 그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황야의 그리스도’(1871)에서 잘 나타난다. 크람스코이는 황야의 삭막한 언덕에서 홀로 깊은 고뇌에 빠진 그리스도의 모습에 자기 자신을 비롯해서 당시의 행동하는 지식인들을 투영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그린 인물들은 하나같이 시대에 대한 고민과 정의감이 넘친다. 크람스코이는 특히 당대의 시대적 양심의 표상이었던 톨스토이에게서 깊은 감명과 영향을 받았다.





‘민중 속으로’ 들어가 살아난 러시아 미술

당대 역사적 상황 사실적 표현 후대 영향





#역사화·풍속화의 거장 레핀

크람스코이의 신념과 예술적 성찰을 함께 나눈 동료이자 제자가 일리야 레핀(1844-1930)이다. 레핀은 러시아 초상화 미술의 대가이며 역사화와 풍속화의 거장으로 우크라이나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큰 재능을 보였고 1864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여서 평생의 스승인 이반 크람스코이를 만났다. 레핀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1870-73)이다. 이 작품으로 레핀은 “지금까지 러시아 미술이 창조해 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림을 들고 나타났다.”라는 극찬을 받으면서 러시아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레핀이 쓴 글에 의하면 어느 날 스케치를 하기 위해서 강가에 나갔다가 더러운 누더기를 걸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는데, 이 사람들이 바지선을 끄는 인부들이라는 말을 듣는다. “가축을 대신해서 사람이 배를 끄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은 레핀은 이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하고 예정되었던 프랑스 유학을 미루고 3년에 걸쳐서 완성한다.



#러시아 미술 새 길 제시한 ‘이동파’

레핀은 민중을 단지 삶에 짓눌려서 절망과 고통으로 허우적대는 모습만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레핀은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인간적인 아름다움과 개개인의 고유한 삶의 표정들이 있는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인간의 모습을 표현했다. 이로써 이동파 미술이 단순히 현실에 대한 사실적 묘사에 머물지 않고 한 단계 더 예술적으로 성숙하게 되었다. 이후 레핀은 파리로 유학을 떠나서 인상주의 미술을 접하지만 러시아 화가인 자신에게 더 중요한 것은 러시아가 처한 상황을 그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찍 돌아와서 활동한다. 그리고 1893년 크람스코이가 ‘반란자들’과 떠났던 미술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면서 이동파는 사실 상 막을 내린다. 이렇게 시대적 소임을 자청하면서 ‘민중 속으로’ 들어가고자 스스로 반란자가 된 이동파는 러시아 미술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이동파의 탄생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또 다른 인물은 러시아의 부유한 상인 파벨 트레차코프(1832∼1898)다. 크람스코이와 레핀은 물론이고 수많은 이동파 화가가 트레차코프의 지지와 후원을 받았다. 물론 트레차코프가 이동파 화가만 후원 한 것은 아니다. 그가 없었다면 러시아 미술 또한 없었을 것이라고 할 만큼 트레챠코프는 보기 드물게 넉넉한 최고의 후원자였다. 메디치 가문이 없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트레차코프를 빼고 러시아 미술을 말 할 수가 없다. 그는 사업으로 번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기호나 취향에 상관없이 가난한 화가의 작품을 비싸게 사주거나 때로는 검열 대상으로 지목된 작품을 망설임 없이 수집하면서 수많은 화가들을 도왔다. 1892년에 트레차코프는 수집한 작품 2천여점을 국가에 기증하였고, 이 작품들을 토대로 오늘 날 러시아 미술관을 대표하는 ‘트레챠코프 미술관’이 건립되었다.



심옥숙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로 박사를 마쳤다. 이 논문은 독일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대학강의와 함께 통합적 인문학의 관점에서 보는 시민의식 실현을 꿈꾸며 다양한 형식의 시민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동명동에 자리한 동네책방 ‘심가네박씨’를 운영 중이다. 저서로는 ‘Der Tanz bei H.Heine’ ‘괴테의 생각을 읽자’ ‘다시 읽는 서양철학사’(공저) ‘철학 개념 용례 사전’(공저) 등이 있다.

cms20@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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