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추가최종편집 4.10(수) 14:43
 
소개 CEO 인사 오시는 길 광고문의 구독신청

한반도 구석기시대부터 먹이로 이용, 2천년 전부터 사육시작

조현종의 고고학 이야기
2019. 01.31(목) 11:01확대축소
한반도 구석기시대부터 먹이로 이용, 2천년 전부터 사육시작







돼지 사육은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진행됐으며

전세계에 1000여종이 분포

사육종이 확실한 돼지종은

9천 년 전 신석기시대

중국 하남성 가호(賈湖)유적

뼈자료가 가장발라

우리나라 독자적인

가축화에 증거는 희박

신석기시대 중국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

구체적인 증거는 없어







조현종의 고고학 시선

1. 돼지의 고고학



신창동에서 발굴된 유물

통영욕지도 신석기시대 유물











예전의 일이 되었지만, 겨울은 노루나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의 수난시절이었다. 산간은 물론 농촌에서도 그들이 길목에 파놓은 함정에 빠져있거나 덫에 걸린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유년시절 함정에 빠져 사납기 그지없는 멧돼지를 보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었다. 요새 도시까지 출현하여 마구 휘젓고 다니는 멧돼지 뉴스는 차라리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우리의 도시는 원래 그들의 터전이었으니 말이다. 아니면 그만큼 자연이 그리워진 탓도 있겠다. 결국은 동물의 세계나 인간의 세계나 저돌(猪突)의 결과를 미루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기해년(己亥)년 돼지해이다. 과학이 발달한 요즘에도 ‘올해는 OO(동물)의 해이고 당신은 몇 년생이므로 OO띠(동물)다’는 이른바 십이지의 풍속은 우리의 삶속에 깊숙하게 자리한다. 돼지는 십이지의 마지막, 예컨대 복과 행운을 가져온다는 열두번째 동물이다. 우리나라나 중국에선 돼지(亥)를 가축인 돼지로 이해하지만, 일본에서는 멧돼지를 지칭한다. 돼지는 인간이 멧돼지를 장기간동안 길들여 놓은 가축으로, 서로 생김새는 다르지만, 같은 종에 속한다. 그래서 이 둘은 교배가 가능하다.

한반도 사람들은 언제부터 멧돼지를 이용하였을까?

구석기시대유적에서 출토된 멧돼지 뼈는 당시에 야생의 멧돼지를 잡아먹었다는 증거이다. 일반적으로 야생동물을 폭넓게 이용한 시기는 신석기시대이다. 신석기시대 사람인들의 대표적인 사냥감은 사슴과 멧돼지였다. 그들은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고기와 질 좋은 가죽을 얻었을 뿐 아니라, 뼈와 뿔, 이빨 등은 생활에 필요한 도구나 악세사리로 사용하였다. 멧돼지이빨로 만든 장신구, 그리고 통영 욕지도 출토품과 같이 멧돼지를 닮은 크고 작은 토우도 이때 등장한다.

돼지 사육은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다원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전세계에 1000여종이 분포하고 있다.

사육종이 확실한 돼지종은 약 9천 년 전 신석기시대의 중국 하남성 가호(賈湖)유적 출토 뼈자료가 가장 빠르다.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인 멧돼지의 가축화에 관한 증거는 희박하다. 따라서 신석기시대에 중국대륙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70연대, 북한학계가 웅기 서포항유적과 무산 범의구석유적 등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개뼈와 함께 출토된 돼지뼈를 사육종으로 보고하였을 때만해도 우리나라의 돼지사육역사는 아시아에서 매우 빠른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동물고고학자들은 계측된 돼지의 턱뼈가 야생종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현재까지의 자료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돼지사육은 약 2천 년 전 초기철기시대에 시작된다.

한반도의 자연환경에서는 오히려 돼지사육에 따른 사료비용과 위험부담을 감수하기보다는 야생의 사슴과 멧돼지를 사냥하는 것이 생계경제에서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돼지 사육이 진행된 뒤에도 유적에서는 멧돼지뼈의 출토량이 훨씬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것은 당시 돼지사육의 진정한 목적이 의례용 공헌물의 지속적인 확보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고대의 제사에는 반드시 동물이 희생으로 바쳐졌으며 몇몇 유적에서는 어린돼지의 머리뼈가 통째로 구덩이에 묻힌 채로 발견되는 사례도 있다.

기원전 1세기경의 광주 신창동유적에서는 멧돼지 형상을 묘사한 작은 토우가 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의 토우에 비하면 단연코 사실성이 돗보인다. 아쉽게도 깨져서 전체의 모습은 상상을 필요로 하지만, 두툼한 코와 그 위에 새겨진 주름, 그리고 양옆에 달린 타원형의 째진 눈의 모습은 영락없이 멧돼지 그 자체이다. 이 토우는 역시 제사에 공헌용으로 사용하고 파손시켜 폐기한 의례활동의 부산물이다. 이 시기는 「의례의 시대」라고 정의할 만큼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다양한 의례활동이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초기철기시대에서 신라시대까지의 사육종 돼지의 뼈자료는 13개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다. 출토근거에 따라 용도를 살펴보니 의례용과 식용의 비율이 대략 5:5이다. 이것은 제사를 지낸 뒤 머리뼈는 땅에 묻고 몸통은 나누어 먹었음을 의미한다. 용처별로 개체의 부위를 분해하여 이용한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도 멧돼지는 여전히 그들에게 중요한 사냥감이었다.

한편, ‘삼국지’ 위지동이전,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고대문헌은 부여에서는 돼지를 신성한 동물로 여겼으며, 고구려는 주로 제사의 공헌물로 사육하였고 주호(지금의 제주도)에서도 돼지를 길렀다고 하였다. 백제와 신라에서도 돼지의 기록이 확인되고 있지만, 고려시대 이후가 되면 사례가 줄어든다. 역시 불교의 융성에 따라 도살을 금하게 하게 된 영향이다. 조선시대에는 돼지가 유교적 제의뿐 아니라 일반에서도 이용되었지만, 사료부담이 커서 사육을 꺼렸다고 한다. 돼지는 결국 사람의 식량을 먹기 때문이다.







조현종은

전남대와 홍익대학서 수학하였으며 고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2016년까지 광주 신창동유적 조사 연구를 수행했고, 정년후에는 광주고고문물연구소를 설립하여 신창동문화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의 유적유물’ ‘한국 초기도작문화연구’ ‘저습지 고고학’, ‘2,000년전의 타임켑슐-광주신창동유적’등 다양한 논문과 저서를 발간했다.

mdeung@srb.co.kr
회사소개 | 회원약관 | 개인보호정책 | 청소년보호정책 | 공지사항 | 제휴문의 | 광고문의 | 기사제보 | 구독신청

제호 : 아트PLUS 등록번호 : 광주 다 - 00259 등록일 : 2013. 9. 18. | 발행.편집인 : 장인균 문의메일 : mdart@mdart.co.kr 웹메일

61234 광주 북구 제봉로 324 (중흥동, SRB빌딩) (주)SRB무등일보 제보 및 문의 062-606-7737(代) 팩스 062-382-0440 Copyright ⓒ mdart.co.kr

본사이트의 게재된 모든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 의 사전 허가없이는 기사와 사진을 무단전재 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