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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음악, 알레한드로 산즈 Cuando Nadie Me Ve
2019. 02.27(수) 07:49확대축소
지칠줄 모르는 음악탐험으로 대중과 호흡한 영원한 음악인



알레한드로 산즈 Cuando Nadie Me Ve





플라멩코 선생님은

“플라멩코는 굉장히 어려워

리듬을 한번 놓치면

다른 이에게 넘기고 빠져야 해

넌 정말 실력이 별로구나”너무 혹독했고 잔인했다

잔인한 선생님 덕분에

플라멩코를 다양하게 접목해

전 세계 음악 팬들을 사로잡았으니











사진2 호주 퀸스랜드의 한 해변



알레한드로 산즈는 개인적으로 각별한 추억을 제공한 음악인이다.

호주 유학시절 콜롬비아 보고타 출신 루치아 예페즈 파티뇨라는 친구가 들려준 꾸안도 나디에 메(Cuando Nadie Me ve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을 때)는 특별한 정서를 유발한다.

알레한드로 산즈의 곡은 몇 년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샤이니의 종현이 그의 곡 ‘이, 씨 푸에라 엘라(Y, si fuera ella 그리고 만약 그녀였다면)’을 혜야라는 곡으로 리메이크해 부르기도 했었다. 이 곡은 낮은 허스키한 목소리에 호소력이 무척 짙은 곡이다. 그의 곡들이 대부분 가사가 길고 시적인 감성이 묻어 나오는 곡들이 많다. 이 곡처럼 처음 딱 듣고 심장이 울렁거리고 세상이 마치 뱅뱅 도는 것 같은 설레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한참 한국은 겨울이었을 그 시간, 파도 소리만 간간히 들리던 그 날 밤 우린 알레한드로 산즈의 Cuando Nadie Me Ve만 수십번 돌려서 들었다.

알레한드로 산즈는 1968년 12월 18일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페인 가수이자 작곡가이며 음악가로서 1 천 2 백만 달러의 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본명은 알레한드로 산체스 피사로(Alejandro Sanchez Pizarro)이다. 알레한드로 산즈는 라틴 그래미 어워드를 열 일곱 번 수상했으며 세 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라틴 그래미에서 올해의 음악가상을 세 번이나 획득했다.



사진3 알레한드로 산즈

알레한드로 산즈는 특히 플라멩코에서 영향을 받은 발라드와 팝, 락이나 펑크, 알앤비 그리고 재즈에서 다양한 영향을 받았다. 가족의 플라멩코 뿌리에 영향을 받아 일곱 살 때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산즈는 어려서부터 기타치고 노래 불렀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이런 음악활동으로 인해 많은 문제들을 없앨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책 세일즈맨이었고 기타는 거의 프로 급에 가깝게 연주했다. 이는 바로 산즈에게 영향을 미쳤다. 어느 날은 잠도 안자고 다른 가족들 잠까지 방해하며 기타를 연주하는 산즈를 보고 산즈의 어머니는 부셔버리겠다고 기타를 집어 던진 적도 있었다.

산즈는 안달루시안 혈통의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플라멩코에 노출되었고 처음에는 플라멩코 연주자가 되려고 했었다. 그런데 플라멩코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너무 엄했다. 처음 플라멩코를 배울 때 그 선생님이 그랬단다. 플라멩코는 초심자한텐 굉장히 어려워. 리듬을 한번 놓치면 넌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빠져야 해. 넌 정말 실력이 별로구나.

플라멩코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너무 혹독했고 잔인했다고 산즈는 회상했다. 하지만 이 잔인한 플라멩코 선생님 덕분에 알레한드로 산즈는 플라멩코를 다양하게 접목해 만든 음악으로 전 세계 음악 팬들을 사로 잡았으니 이 또한 얼마나 대단한 교육인가.



사진4 플라멩코 연주자

청소년기의 산즈는 다양한 곳에서 연주했다.

그러던 중 메카노 같은 여러 유명한 스페인 음악 그룹을 키워낸 음악산업 대표인 미구엘 앙헬 아레나스와 계약을 하게 되었다. 1989년에 첫 데뷔앨범 ‘로스 출로스 쏜 파 꾸이달로스(Los Chulos Son Pa‘ Cuidarlos, Alexander the Great_)’를 냈다. 이 앨범은 테크노와 플라멩코의 만남이었다. 처음에 상업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참신하고 새로운 의도가 돋보여 지금 이 앨범은 수집가들의 핫한 음반으로 떠올랐다. 이 음반 발매를 후에 한동안 산즈는 음악 활동에 공백을 갖고 경영을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1997년에 발표한 알레한드로 산즈의 ‘꼬라존 빠르디오(Corazon Partio 상처입은 마음)’은 알레한드로 산즈에게는 전환점 같은 곡이었다.

산즈는 2년간 이태리 밀라노에 머물렀는데 이때에 진정한 퓨젼 음악을 실행하기 위해 애썼다. 다른 소리들을 섞어보기 위해 애썼고 색스폰과 피아노, 기타를 공부했다. 이후에 발표한 다섯 번째 스튜디오 음반이 ‘마스 Mas 좀 더)’였는데 플라멩코에 강력하게 영향을 받은 팝과 열대의 리듬들을 함께 접합시켰다. 이 음반의 여러 곡들은 스페인에서만 2백만장 넘게 팔렸고 스페인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에 등극했다. 그리고 22개국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이 음반은 빌보드 라틴 차트에 74주간이나 랭크 되어 있었고 그 이듬해 이 앨범으로 인해 온다스 어워드에서 베스트 음악으로 꼽히게 되었다. 남 플로리다의 선 센티넬의 데이비드 카자레스에 의하면 산즈는 이 코라존 파티오라는 앨범으로 살사팝의 저력을 스페인에서 쿠바로 그리고 전 세계로 알린 스페인 최고의 음악인이라고 평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산즈는 처음으로 미국 투어에 나서게 된다.

“이 앨범은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선택해 나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무척 중요합니다. 만약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음악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음악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음악이란 리듬이 있는 복합체이니까요.”

2001년 엘 알마 알 아이레 (El Alma al Aire 공기속의 영혼) 인터뷰에서

샤키라와 알레한드로 산즈
그의 다섯번째 앨범 엘 알마 아이레는 2000년 9월 26일에 발매되었다.

산즈는 더 넓은 음악적인 장르와의 콜라보를 시행했다. 재즈, 알앤비, 소울과 탱고까지 말이다. 스페인에서만 첫 주에 백만 장이 팔린다. 그 전 앨범이 백만 장이 팔리기까지 한 달 걸렸던 기록을 갱신했다. 후에 산즈는 앨범 El Alma al Aire를 아이리쉬 밴드인 더 코어스와 함께 발표하기도 했다. 2002년 10월 산즈는 마이클 잭슨과 자선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2002년 산즈는 플로리다 마이아미, 건스만 센터에서 MTV 언 플러그드 앨범을 녹음하는데 이는 스페인 가수로서는 최초였다. 필자의 인생음악 Cuando Nadie Me Ve가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산즈는 이때를 계기로 음악을 대하는 방법을 바꾸고 공연이나 녹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재발견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4년 하버드 대학 최초로 스페인 음악가로써 라틴 아메리칸 연구에 관한 히스패닉의 문화에 대한 강연을 펼쳤다. 2007년 산즈가 작곡하고 샤키라와 함께 공동 작업했던 La tortura는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더욱 다양한 팬 층이 확보되었으며 차기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그리고 산즈는 후아네스, 알렉스 곤잘레스와 함께 노래했다.

















사진5 샤키라와 알레한드로 산즈

2007년 여름 산즈는 월드 투어 중에 정신적으로 완전 무너져 내렸다. 그의 의사가 모든 일정을 중지하고 두 달을 쉬라고 했다. 너무나 많은 일을 겪어서였다고 의사는 말했다. 2005년 그의 아버지가 사망했다. 그리고 그와 결혼을 했던 멕시칸 모델과의 결혼이 파경에 이르렀다. 3살된 혼외 자식이 있다는 보도가 대서특필 되면서 사생활에 큰 부담이 되었던 듯 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이런 정신적 붕괴를 겪으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절대 이런 일은 안 겪을 줄 알았다고.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산즈는 더욱 단단해져 갔고 사람들을 더욱 많이 도우면서 스스로 회복해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끔은 독재자를 향해 비민주적이라며 비난을 하기도 하고 음악적인 저변을 넓히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었던 시간을 계기로 그림을 시작했고 그림을 통해 음악에 대한 창조의 에너지를 얻는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살면서 겪을 다양한 실패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가르쳐준다고. 그리고 이미 위험을 감지 했다면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산즈는 2012년 3월 23일 전 조수 라켈 페레라와 결혼했다. 그리고 아들 딜런과 딸 알마를 얻었다.





사진 6 알레한드로 산즈와 그의 아들, 딸

2013년에는 버클리 대학에서 음악으로 명예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산즈는 최고의 음악 대학에서 엄청난 학위를 취득했다며 그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날마다 최선을 다하겠노라 약속했다.

그의 목소리는 거친 달콤함을 선사한다. 끈적이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애절하면서도 불쌍하지 않다. 섹시하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강력하다. 가끔 마구 섞여있는 내 Usb 음악들 사이에 끼어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반주 부분만 흘러나와도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어지러워진다. 그리곤 생각한다. 우정이 가져다 준 이 놀라운 음악에 대하여.

이 겨울의 끝에서 무언가 감미로운 감성에 흠뻑 빠져보고 싶다면 너무도 잘생긴 알레한드로 산즈가 노래하는 Cuando Nadie Me Ve를 한번 들어보자. 춥다는 생각일랑 전혀 하지 않게 될테니.

okkim@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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