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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의 미학’ 사과 한개로 세계를 놀라게 하다
2019. 03.13(수) 16:17확대축소
핑크색 배경의 자화상(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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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 - 김허경의 미술기행- 세잔 아틀리에(Atelier Cezanne)

제목- ‘멈춤의 미학’ 사과 한개로 세계를 놀라게 하다





혹자는 세상을 바꾼 세 개의 사과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의 사과를 일컫는다. 이 중에서 후기 인상파 화가인 세잔은 200여점에 달하는 작품을 통하여 사과의 형태와 색채를 탐구했다. 세잔은 절친한 벗인 에밀 졸라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사과 한 개로 파리를 놀라게 하고 싶다”고 언급한 대로 파리뿐만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입체파를 선도했던 피카소는 “나의 유일한 스승 세잔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아버지와도 같다”고 칭송했다. 20세기 미술사를 저술한 많은 비평가들 역시 세잔을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들은 세잔이 그린 사과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세잔의 출생지이자 말년을 보낸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에 있는 그의 아틀리에를 찾아 나섰다.

지중해를 따라 남쪽 해안 마르세유에서 북쪽으로 약 30여분 차로 이동하면 청명한 하늘, 강렬한 태양, 따스한 바람이 일렁이는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진다. 엑상프로방스는 프로방스에서도 물이 많은 곳, 즉 샘(泉)을 가리키는 물의 도시로 불린다.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미라보 거리는 17~18세기의 건축물들 사이로 늘어선 플라타너스 나무와 크고 작은 분수대에서 뿜어내는 영롱한 물빛들로 찬란하다.

엑상프로방스는 세잔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92년부터 문을 연 녹색 차양의 카페 레 되 가르송(Les Deux Garcons)에 들려 세잔과 졸라가 미술과 문학, 정치와 혁명의 열띤 토론을 펼치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비록 두 사람의 우정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열정과 꿈을 나누었던 장소다.

시청 앞에 들어선 주말 마켓을 구경하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레스토랑을 지나 갓 구운 빵 냄새에 이끌려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그라네 미술관(Musee Granet)과 생 소뵈르 대성당(Cathedrale Saint-Sauveur)을 순차적으로 만난다. 그라네 미술관은 2006년, 세잔 타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잔의 작품들을 한데 모아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으며 현재 10여점의 작품을 상설전시 중이다. 생 소뵈르 대성당은 500여년에 걸쳐 완공된 까닭에 로마네스크의 둥근 아치와 주랑, 고딕의 수직 첨탑 등 중세 건축의 다양한 양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역사적 가치와 뛰어난 건축미를 지닌 이 곳에서 1906년 세잔의 장례식이 열렸다. 세잔은 1870년에 이어 1902년 ‘생 빅트와르 산’ 연작에 다시 몰두했는데 야외에서 맞은 폭우로 인하여 폐렴에 걸리고 만다. 이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원사 발리에’(1906)의 초상을 다듬기 위해 정원에 나갔다가 쓰러져 죽음을 맞는다.

1969년 미술관으로 등록된 세잔의 아틀리에는 도심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레 로브(Les Lauves)의 낮은 언덕에 있다. 인디고 핑크로 칠해진 작은 대문 너머로 울창한 정원 속 아담한 2층 주택과 솟아오른 아름드리 나무아래 벤치가 놓여 있다. 아틀리에라는 표지판을 보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로 대가의 작업장이라고 보기엔 소박하고 평범하다. 미술관 안내문에서 조차 “이 작업실은 전통적인 미술관이 아닙니다. 이곳에 세잔 자신 이외의 다른 것을 찾으러 오지 마십시오”라고 소개한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밟고 2층에 오르면 세잔의 자취가 15평 남짓의 공간에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다. 아틀리에는 세잔이 직접 그린 설계도에 따라 북쪽에 벽면전체에 해당하는 커다란 유리창을 설치했고, 바로 옆은 1894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대작 ‘목욕하는 여인들’의 캔버스를 들여놓기 위해 상하로 길고 좁은 통로를 만들어 문을 달았다. 여기다 남쪽으로 두 개의 창문을 더 내어 자연광이 실내에 일정하게 들어오도록 유도했다.

작업실 모서리에는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였던 정물과 석고, 이젤과 기다란 작업용 사다리가 놓여있다. 세잔이 입었던 물감 묻은 작업복과 외투가 걸려있으며 야외스케치를 나설 때 챙겼을 모자와 화구가 담긴 가방도 눈에 띈다. 누구든지 세잔의 정물화를 감상한 경험이 있다면 초록색 손잡이가 달린 토기 물병, 유리잔, 술병, 올리브 단지, 큐피드 석고상, 세 개의 두개골, 책상, 의자, 그릇, 십자가, 화병 등과 같은 소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정물 중에서 테이블 위에 놓인 그릇과 사과를 보니 ‘바구니와 물주전자’, ‘병,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사과와 오렌지’, ‘사과가 담긴 접시가 있는 정물’ 등등 무수한 작품들이 떠오른다. 세잔의 그림을 보면 항아리와 굽이 달린 과일 그릇은 옆에서 본 시점에서, 앞에 있는 과일 접시는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에서, 테이블과 의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기존의 원근법뿐만 아니라 사과의 위치에 따른 색채의 표현법도 전통적인 정물화의 명암법을 벗어나 있다. 언뜻 보면 기울어진 의자 위에 놓인 천, 쏟아질 듯이 느껴지는 과일들이 무질서하여 불안정해 보이지만 대상의 상대적 운동감으로 인해 오히려 구조적으로 견고해 보인다. 그의 정물화에 나타난 다시점(多示點)은 정확한 형태를 그리기 위해 대상의 배치, 색과 색의 대비, 공간의 구성에 따라 주체와 대상의 상호작용을 관찰한 결과였다. 마치 우리의 눈이 하나의 사물을 볼 때 모든 부분을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세잔은 왼 눈과 오른 눈의 시각 차이에 따른 대상의 위치, 구조를 관찰하는데 집중했다. 그는 자신의 눈 위치와 각도, 대상의 움직임에 따라 형태와 색채가 변화하는 문제에 대해 극도로 민감했다. 세잔이 움직이지 않는 사과에 주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초상화를 그릴 때도 모델의 아름다움이나 성격, 얼굴표정, 심리상태의 표현은 안중에 없었다. 오로지 형태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만이 그의 관심사였다. “포즈는 움직이려고 취하는 게 아니네. 저 사과처럼 가만히 있게나. 사과가 움직이는 걸 봤나?” 초상화를 제작할 때 세잔이 한 말이다. 작품을 제작하는 그의 방식은 자신을 그린 다수의 자화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핑크색 배경의 자화상’(1875)을 보면 세잔은 가급적 고개를 움직이지 않기 위해 곁눈으로 애써 시선을 고정시켰고, 시야의 범위를 넓히고자 눈썹을 치켜 올린 모습이다. 한마디로 사과처럼 움직이지 않는 대상이 되기 위해 스스로 취한 경직된 모습들이다.

보는 것과 보여 지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세잔의 사과는 사물을 파악하고 관찰하는 기본적인 자세로서의 시각(視角)과 눈을 통해 빛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각 작용으로서의 시각(視覺)을 하나로 일치시키기 위한 탐구의 대상이자 본질(本質)을 의미한다.







김허경은

전남대학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한 미술학 박사다. 현재 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한국프랑스문화학회 편집위원, 광주미술문화연구소 연구원 등을 통해 작품 연구, 미술사 강의, 미술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 ‘호남근현대미술사’(2018) 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사과와 오렌지(1895-1900)
미라보 거리의 세잔 동상
미라보 거리의 세잔 동상
세잔 아틀리에 1층 입구




lyj2578@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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