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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행-심옥숙(막심 고리키)
2019. 03.13(수) 16:21확대축소
막심 고리키1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행하는 것



인문지행- 인간이 신과 나눈 가장 훌륭한 대화



고리키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 민중의 아픔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탁월한 솜씨를 가진 작가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삶을 견디며 살아가는,

‘몸뚱이와 거친 손발’ 밖에는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고통은 고리키에게

모른 척 할 수 없는 진실과 정의의 문제였다.

고리키는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막심 고리키라는 필명을 작품에 사용했다.

고리키가 러시아 구석구석을 도보여행하며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천천히 행간을 따라가면

아주 특별한 의미를 찾게 된다.

때로는 두서가 없고 당황스럽기조차 하지만

어느 순간에 외면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을 향한 물음과 맞닥뜨리게 된다.

왜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가졌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빼앗으려 하거나,

자신이 믿는 진실을 강요하면서 증오하는가?

서로에게 왜 좀 더 너그럽지 못하는가?

마법사 할머니는 삶의 진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을 몰라서 그렇다고 말한다.





“내 말이 누군가의 눈물을 말려 줄 수 있다면 기쁘지요.” 라고 어느 묘지 관리인이 말한다. 이 묘지 관리인은 막심 고리키(1868-1936)의 단편집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그는 장례 미사를 한참 지내는 곳에 가서 악기를 연주하다가 신부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거나 묘지 근처에 사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거지 여자와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누가 그 여자를 위로해 주기나 합니까? 아무도 없지요. 나 말고는요.” 묘지 관리인이라는 위치가 그리 존경을 받거나 대단한 명예를 자랑하는 자리는 아니다. 오히려 무시와 경멸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은 직업이다. 당연히 사는 것이 여러 모로 넉넉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관리인은 개의하지 않고 자신보다 더 외롭고 더 슬픈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작 본인은 위암 말기로 고통을 심하게 겪으면서도 쾌활하게 일하면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으로 끝난다. 읽는 동안 내내 안으로부터 묵직하게 올라오는 것이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하는 자문이다. 남보다 많은 것을 알고 배워야만 더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남보다 많은 것을 가져야 더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묘지 관리인을 통해서 다시 깨닫는다. 사는 것에 정신없이 바빠서 남의 눈물에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다는 것이 사실은 형편없는 변명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러시아의 작가라면 대부분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꼽지만, 이 두 작가 못지않게 뛰어난 작가들 중에서도 특별한 작가가 막심 고리키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고리키의 대표작이 누구나 한 번은 읽어야 한다는 그 유명한 <어머니>다. 노동자인 아들이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사는 것이 나아지지 않는 부당한 사회구조에 분노하며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 평생 그저 순종하며 살아 온 어머니의 의식이 차츰 변화해 가는 이야기다. 처음 아들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어쩔 줄을 모르던 순박한 어머니는 어느 사이에 스스로 자신의 삶에 혁명을 일으키면서 한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존재가치를 찾는다.



고리키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 민중의 아픔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탁월한 솜씨를 가진 작가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삶을 견디며 살아가는,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와 거친 손발’ 밖에는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고통은 고리키에게 모른 척 할 수 없는 진실과 정의의 문제였다. 이런 맥락에 걸맞게 고리키는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막심 고리키라는 필명을 작품에 사용했다. 흔히 톨스토이를 다이아몬드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고 말하는 데 비해서 고리키는 태어나면서부터 영락없는 밑바닥의 한 사람이었다.



고리키는 볼가 강 연안의 산업 도시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다. 3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재혼하는 바람에 외조부모의 손에서 자랐다. 재혼해서 떠난 어머니마저 고리키가 10살 때 세상을 떠나고 외할아버지가 파산하자 그 때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세상을 떠돌았다. 넝마주이에서부터 공장 노동자, 짐꾼 등 하층 노동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가리지 않고 했지만 살기는 늘 힘겨웠다. 이렇게 떠돌다가 12살 때 여객선 식당에서 접시닦이로 일하면서 만난 요리사에게서야 겨우 글을 배워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고리키의 글 쓰는 능력은 여느 작가처럼 대학에서 또는 책으로 가득 찬 서재에 앉아서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에 그는 거칠고 가난한 사람들이 오가는 ‘길 위에서’ 작가로서의 재능을 찾았고, 하층민들로부터 삶의 생생한 진실을 배웠다. 이때의 경험이 바로 고리키 문학 세계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생명력을 만들어 내는 원천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하층민의 삶을 대변하는 작가로서 성숙한 고리키는 그의 탁월함을 높이 평가한 톨스토이뿐만이 아니라 시대적 문제의식을 공유했던 러시아 혁명가 레닌과도 깊은 우정관계를 평생 유지했다.



고리키의 단편에서 쉽게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은 마을에서 마법사라고 불리는 한 할머니다. 마을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는 젊었을 때는 곰 사냥 일을 했는데 곰을 수십 마리 잡았다고 전해질 만큼 건장한 체격을 가졌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를 두려워하면서도 어려움이 닥치면 달려와서 도움을 청했다. 어느 날 이 할머니가 한 밤중에 누군가를 매섭게 꾸짖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내용이 기상천외다. 야단을 맞는 대상이 사람이 아니고 그 마을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믿어 온 토속 신앙을 억압하는 기독교의 신이었다. 할머니는 거침없이 이렇게 따진다. “신이 신을 몰아내다니요. 사람들에게 뭘 가르치려는 겁니까?” 하면서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일갈한다. 할머니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다. 신은 신답고, 사람은 사람다운 것이다. 신답지 못하고 이유 없이 미워하고 싸우면서 괴롭히지 말고 각자의 다른 믿음도 서로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모두의 본성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면서 더 힘이 센 쪽이 좀 더 너그러워야 하는 것이 삶의 진실이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행하는 것이라고 거침없이 나무란다. 물론 할머니가 야단치는 대상은 신의 이름을 내세워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이웃을 억압하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다. 이 이야기의 끝을 고리키는 “인간이 신과 나눈 가장 훌륭한 대화”라고 마무리했다.



고리키가 러시아 구석구석을 도보여행하며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조금은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천천히 행간을 따라가면 아주 특별한 의미를 찾게 된다. 때로는 두서가 없고 당황스럽기조차 하지만 어느 순간에 외면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을 향한 물음과 맞닥뜨리게 된다. 왜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가졌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빼앗으려 하거나, 자신이 믿는 진실을 강요하면서 증오하는가? 서로에게 왜 좀 더 너그럽지 못하는가? 마법사 할머니는 삶의 진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을 몰라서 그렇다고 말한다. 염치없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법사 할머니의 호된 꾸지람이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한 진실로 다가온다.



심옥숙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로 박사를 마쳤다. 이 논문은 독일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대학강의와 함께 통합적 인문학의 관점에서 보는 시민의식 실현을 꿈꾸며 다양한 형식의 시민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동명동에 자리한 동네책방 ‘심가네박씨’를 운영 중이다. 저서로는 ‘Der Tanz bei H.Heine’ ‘괴테의 생각을 읽자’ ‘다시 읽는 서양철학사’(공저) ‘철학 개념 용례 사전’(공저) 등이 있다.



심옥숙(인문지행 대표·전남대 강의교수)



고리키의 서재
모스크바의 고리키 박물관
모스크바의 고리키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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