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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홍수 시대, 재구성 플랫폼 고민해야
2019. 04.10(수) 14:05확대축소
▲디지털 소멸 시스템(Digital Aging System)
문패, 최행준의 예술거울과 미학렌즈-말과 글 그리고 인터넷



제목-정보홍수 시대, 재구성 플랫폼 고민해야

부제-인터넷, 실시간 토론 가능한 글·책의 변형

글과 말의 중간… 기억보조장치 역할

사용자로서 상황 맞게 환기할 줄 알아야





인터넷의 본질은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조명될 수 있겠지만 정보의 기록과 유통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인터넷은 글과 책의 변형이다. 말의 순간성과 휘발성을 보완하기 위해 글이 생겼고 글을 묶으면 책이 된다. 책은 필사, 목판인쇄, 금속활자 인쇄, 디지털 파일과 통신망 등으로 그 유통 방식이 변해 갔으니 인터넷을 정보의 기록과 유통의 관점에서 보면 그 기원은 글과 책이다.

책을 제작하는 방식은 오랫동안 필사였다. 제작에 오랜 노동과 시간이 필요한 필사를 대신한 것이 목판인쇄다. 나무에 글을 새기고 다량으로 찍어내는 기술은 필사의 수고를 대신했다. J. 구텐베르크(1398~1468년)의 금속활자 기술이 소수의 글쇠를 짜 맞춰 판으로 만들고 이를 기계식 장치로 압착하여 인쇄방식을 혁신했다. 금속활자 및 프레스가 책을 통한 지식보급과 사회변혁에 끼친 역할을 지대하다. 종교개혁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책을 통한 지식의 보급은 인류가 생각하는 방식을 내적으로 변화시켰다.

지난 300년 동안 정보의 기록 및 유통 영역에서 굳건한 자리를 지키던 책은 기록의 영역에서 데이터로, 유통의 영역에서 인터넷으로 전환된다. 책은 한 번 인쇄되면 고칠 수 없는 고착성을 갖고 있지만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는 복제, 편집 그리고 수정이 자유롭다. 인터넷 텍스트의 가소성은 대학생들의 보고서 작성에서 빛을 발한다. 복붙으로 불리우는 Ctrl C+V는 인터넷 텍스트의 가소성을 상징한다.

말과 글 그리고 책에서 시작하여 데이터 및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연장선의 축에서 사고를 시작해야 한다. 지식을 소통, 기록, 유통하려는 인간적 욕구가 말, 글, 책, 인터넷의 근본 동기이기 때문이다. 이를 한 축에 두고 사고를 시작하려면 이들의 근본적 차이에 대한 개념이 필요하다. 차이를 포착하기 위한 개념은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다. 학생, 유저, 학자, 칼럼니스트, IT기획자, 콘텐트 제작자, IT분야 스타트 업 창업자 등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제시하고 설득하려는 모든 사람은 해당 영역에 대해 근본적 차이를 드러내는 개념을 제시하고 자신의 기획이 타당하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내가 제시하는 개념은 첫째, 순간성과 휘발성 그리고 지속성과 고착성이다. 말은 순간성과 휘발성을 특징으로 갖지만 글은 지속성과 고착성을 특징으로 갖는다. 말은 발화와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다만 화자의 기억과 청자의 기억 속에만 남는다. 그러나 글은 지속성과 고착성을 특징으로 갖는다. 글로 기록된 책은 한번 출판되면 바뀌지 않는다. 데이터화된 인터넷은 글과 말의 중간에 위치한다. 인터넷 정보는 말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글처럼 고착되지도 않는다. 정보의 데어터화와 인터넷 유통망은 말이 가진 단점과 글이 가진 단점을 보완한다. 반대로 데이터화 된 인터넷 정보는 말이 가진 단점과 글이 가진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기도 하다.

두 번째 개념은 상호성과 일방성이다. 말은 상호성이 높다. 말은 청자와 화자가 주고받기 마련이다. 소크라테스(B.C 470~399년)가 대화를 그토록 소중하게 여긴 이유는 진리를 탐구할 때 말이 갖는 상호성 때문이었다.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고 더 나은 의견을 찾아가는 가운데 진리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은 일방적이다. 책의 저자는 독자의 의견을 들을 수 없고 독자는 저자의 의견을 들을 수 없다. 인터넷은 글의 일방성을 교정하려는 매체로 파악할 수 있다. 저자의 의견에 독자는 댓글을 달 수 있다. 댓글은 다른 독자의 댓글 또는 저자의 댓글을 부른다.

셋째, 정보 유통의 범위의 제한성과 무한성이다. 말은 화자와 청자의 직접적 관계를 전제한다. 직접 만날 수 있는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한계 내부에 있는 사람에게만 정보가 전달된다. 그러나 책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 물리적으로 출판된 책을 볼 수 있는 사람 모두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인터넷은 정보 유통의 범위를 더 확대한다.

제시한 세 가지의 대립 개념을 중심으로 말과 글 그리고 인터넷 데이터를 사고하면 각 매체의 장점과 단점이 드러난다. 그러나 장점이 항상 좋고 단점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G. W. F. 헤겔(1770~1831년)이 그의 변증법에서 인류에게 제시한 진리는 모든 현상이 그 장점 때문에 단점으로 변하고 그 단점 때문에 장점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말의 상호성은 장점이지만 순간성과 유통의 제한성은 단점이다. 글의 일방성은 단점이지만 지속성과 유통의 무한성은 장점이다. 반대로 말의 상호성은 순발력이 강한 사기꾼의 술책을 견제하지 못한다. 글의 지속성은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전문가의 권위와 비전문가의 예속을 강화하고 유통의 무제한성은 상황과 맥락이 다른 지역과 사회에서 폭력을 정당화 하는 논리로 쓰일 수 있다.

말과 글을 개념 중심으로 사고하면 정보 기록과 유통 관련 미래산업을 보는 새로운 눈이 트인다. 보안이 특화된 매체 또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모든 정보가 복구 불가능하게 사라지는 매체는 글이 가진 지속성과 유통의 무제한성이라는 단점을 파고든 매체이다. 디지털 소멸 시스템(Digital Aging System)이 그것이다.

글의 강력한 힘이 문명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글에는 장점만 있을까? 인류 문명에서 글이 본격적인 힘을 발휘하던 시기 플라톤(B.C428~348년)은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의 통찰을 기록하고 있다.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은 소크라테스는 글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아무 곳에서나 일방적으로 아무 말이나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글의 이러한 단점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글이 기억의 약이 아니라 환기의 약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제시한다. 소크라테스가 글을 비판하는 대목을 쓰고 있는 플라톤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을까?

소크라테스는 글을 쓰는 대신 살아있는 생명들과 진리에 대해 대화했다. 글이 기억의 약으로 행세하면 사람들이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기만 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식은 인간을 지혜롭게 할까 지혜롭게 보이게만 할까? 오늘날 살아있는 인간은 책과 정보에 지배당할까 책과 정보를 지배할까? 우리는 책을 기억의 약으로 사용할까? 상기의 약으로 사용할까?

나는 기억과 상기의 차이를 능동성 유무로 판단한다. 기억은 수동적으로 저장된 것을 소환한다. 그러나 상기는 상황과 맥락에 맞게 저장된 것을 재구성한다. 책과 인터넷은 기억보조장치이지만 이를 상황과 맥락에 맞추어 소환하는 환기는 인간의 활동이다. 소크라테스가 글의 기록이 지혜롭게 보이기만 한 것이라 비판한 것은 진리의 재구성 능력의 상실을 의미한 것이 아닐까?

글과 책의 거부로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그의 현재성을 상실하게 한다.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도 그의 주장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상기 능력의 상실, 진리의 능동적 재구성 능력의 상실을 경계하는 것이다.

글과 책의 변형이지만 실시간 토론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인터넷은 책의 자기 계량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정보도 유저의 태도에 따라 수동적 기억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정보홍수 시대에 유용한 정보를 분별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인터넷의 정보가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이 정보를 재구성하는 사회를 위한 플랫폼을 고민할 때이다. 기술이 인간활동의 도구로서 자유의 확대에 기여하려면 말이다.
시민자유대학 교수



최행준은

전남대학교 철학과에서 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대학과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미술교육, 미술사, 미학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광대와 기생으로서의 예술 개념을 넘어 진실을 표현하는 예술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미지의 복제와 전송이 자유로워진 시대, 웹기반의 직관적 화면 구성이 중요한 시대를 미학 또는 예술철학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전남대 코어 학술연구교수, 시민자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보완에 특화된 채팅 ‘텔레그램’
구텐베르크 42행 성경, 1453년경.
구텐베르크 42행 성경, 1453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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