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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라틴아메리카 민중 노래한 라틴아메리카의 어머니
2019. 05.14(화) 19:20확대축소
평생 라틴아메리카 민중 노래한 라틴아메리카의 어머니











메르세데스 소사





남미 전역에서 일기 시작한

누에바 칸시온 운동 동참

(Nueva Cancion: 새로운 노래)

독재·외세배격

전통문화 복원 주창





소작농의 비참한 현실

대지주 착취 비판 노래로

관객 350여 명과 함께 체포

강제출국당 원치 않는 망명



귀국한 후

노래로 군부정권에 항거

1983년 군부 몰락 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삶 노래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삶은 눈을 뜨면 흑과 백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는 두 샛별을 내게 주었습니다/그리고 높은 하늘에는 빛나는 별을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내 사랑하는 이를 주었습니다…삶은 내게 웃음과 눈물을 주어/슬픔과 행복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그 슬픔과 행복은 내 노래와 당신들의 노래를 이루었습니다. 이 노래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 모두의 노래입니다. 모든 노래가 그러하듯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메스세데스 소사의 ‘삶에 감사해’(Gracias a la vida)‘중에서





아르헨티나는181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1982년 12월 민주정권이 들어서기까지 170년 간 잦은 군사쿠데타로 굴곡진 역사를 써온 나라다. 국가 실업률을 3%까지 떨어뜨려 나라를 안정시켰던 후안 페론의 사망 이후 1976년 초 군사쿠데타로 비델라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다른 남미 국가들처럼 공포정치가 시작되었다. 1977년부터 군사 독재가 끝난 1983년까지 삼만 오천여명의 군중이 극심한 고문과 학살로 죽어나갔고 시신을 확인할 수 없는 실종자만도 엄청났다. 그 고문 방식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에서도 잔인함에 치를 떨 지경이었으며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도 잔인하게 해칠 수 있는가에 한번 놀래고 적이 아닌, 타국민이 아닌 자국민을 이념이나 사상이 다르다는 미명하에 이렇게까지 삶을 짓밟을 수 있는가에 탄식이 쏟아져 나오는 이 아르헨티나 최악의 사건을 더러운 전쟁이라 이름 붙였다.



사진 1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더러운 전쟁중에서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이 나라가 겪었던 가슴 아픈 역사의 이야기들을 접하며 하염없는 슬픔과 나라 지킨 이들에 대한 경외심이 묻어 나오는 까닭은 광주도 비슷한 역사의 비극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군중들은 죽어 나갔고 힘들었고 탄압 받았고 삶은 피폐했다. 이런 지옥 같은 삶을 대변한 이가 있었다. 유난히 머리가 검어 라 네그라, 검은 여인이라 불리웠던 그녀, 민중의 어머니 메르세데스 소사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1935년 7월 9일 아르헨티나 산미구엘, 투쿠만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아주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 나이 열 다섯에 그 지역에서 주최하는 라디오 경연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하게 되고 두 달간 라디오에서 노래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 이후 소사는 그녀의 첫 앨범을 발표하지만 그것으로 가수로써 완전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60년대에 누에바 깐시온의 중심에 있었던 음악인 마누엘 오스카와 결혼해 아들을 얻었다. 누에바 깐시온은 시와 음악이 가진 전통적인 서정성과 순수성을 회복하자는 남미를 이끌었던 일종의 음악적 계몽 운동이었다. 소사의 남편 덕분에 소사 역시 자연스럽게 누에보 깐시온 운동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 그녀의 두번째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아르헨티나의 민속음악들을 한데 묶은 음반이었다.

소사는 남미의 민속음악을 복원하는데 무척 애를 썼었다. 1967년에는 미국과 유럽 투어를 성황리에 마치게 된다. 소사는 곡을 쓰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작곡가들이 그녀의 목소리에 영감을 받아 그녀에게 음악을 주었고 소사의 음악은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로 각광을 받았다.



사진 2 1965년 메르세데스 소사



70년대 초기에 소사는 작곡가 펠릭스 루나와 아리엘 라미레즈와 함께 두가지 컨셉의 공동앨범을 발표한다. 뿐만 아니라 비올레타 파라가 칠레인에게 바치는 헌정 앨범을 발표하는데 여기에 수록된 곡이 바로 소사의 대표곡 ‘인생에게 감사해’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 라는 곡이었다. 이 곡은 여러 가수들이 불렀지만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로 각인 될 정도로 전 세계 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사진 3 비올레타 파라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기타라 디 멜로 뚜)는 유빵끼의 곡이지만, 오히려 소사의 목소리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토록, 그녀는 다른 이의 말과 음악을 완벽하게 자신의 말과 음악으로 받아들여 표현하는데 천부적이었고 그녀는 그렇게 누에바 깐시온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아르헨티나의 군부는 그녀가 부르는 노래들에 민중들이 힘을 얻는 것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고 아예 대놓고 소사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 가족들까지 위협했고 나라를 떠나라는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소사는 그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리고 1979년 라 플라타에서 열렸던 콘서트에서 소사는 모든 청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에서 체포되었고 그녀의 악단과 지켜보던 모든 청중까지 체포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녀의 모든 노래들은 금지 되었다. 그녀는 프랑스 파리로 마드리드로 추방당한다.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까지 치달아 어쩔 수 없이 시작된 망명 생활이었지만 존 바에즈, 밥 딜런, 헤리 벨라폰테 등과 음악적인 교류를 활발히 하고 공연을 함께 함으로써 그녀에게는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용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계기가 그녀의 음악적 경계를 넓히는 동시에 유럽 전역으로 그녀의 명성이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소사가 유명해지면서 악독했던 아르헨티나 군부의 만행도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타향살이가 얼마나 한없이 즐겁기만 했겠는가! 소사는 너무 외로웠고 그녀가 사랑했던 남편이 사망했다. 마음을 의지할 곳 없던 소사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게 되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극한의 위기까지 겪게 된다.

결국 그녀는 1982년, 위험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1982년 2월 곧이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오페라 극장에서 가진 소사는 공연을 하게 된다. 군인들이 총칼로 에워싼 가운데 소사는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메르세데스 소사, 아르헨티나인입니다.”라고. 모두가 얼싸안고 울면서 ‘삶에 감사해’를 열창했다. 그리고 마지막 1분 동안 모든 관객들이 일어서 기립박수를 장식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삶에 감사한다고 노래하는 소사를 위해, 그녀의 용기에 대해, 그리고 영혼을 울리는 혼신을 다한 그녀의 목소리에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소사는 단순한 민중 가수가 아니었다. 아르헨티나의 목소리였고 아르헨티나의 영혼이었다.





사진 4 관객들과 메르세데스 소사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티스트는 모든 정치적인 정파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인간의 권리를 믿어요. 난 진정한 평화를 원합니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평생을 살면서 단 한번도 자신의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낀적이 없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불행속에서 참담함에 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주어진 작은 일상, 사소한 사건, 가족의 사랑, 너무 작아 자칫 그 존재까지도 잊고 살 수 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살았다. 그래서 그런가 그녀의 노래는 듣고 있으면 전혀 즐겁지 않다. 기교도 없고 무덤덤한 목소리로 고백하듯이 자조하듯이 툭 내던지듯한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자꾸만 그녀의 목소리의 여운이 남는다. 오래도록. 그리고 가끔은 눈물이 터져 나올 때도 있다.

진정한 평화를 원했고 그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우리의 메르세데스 소사, 자신이 나고 자란 어머니의 나라가 자신을 배척 했을 때도 조국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인생이 너무나 가련하고 안타깝지만 그녀가 남긴 목소리는 너무나 깊고 깊어 여전히 전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아름답기만한 5월을 선물해준 지나간 우리네 역사속의 영웅들이 떠오를 땐 메르세데스 소사의 ‘삶에 감사해’를 들어보자. 감사함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감사함이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을 때 갖는 감정이 아닌 아무것도 없을 때, 정말 절망스러울 때 우리가 다시 용기를 내야 할 때 가져야 하는 감정이 바로 감사함이라고.

mdeung@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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