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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경쟁에 의해 소멸되지 않는 욕망화된 욕망들
2019. 06.13(목) 11:04확대축소
‘흔적’
끝없는 경쟁에 의해 소멸되지 않는 욕망화된 욕망들



김용근의 미술기행-신창운 작가

김 용 근 (동강대학교 교수)





작가는 이글거리는 욕망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존재 근거를 대신하는

어느 것으로도 하지는 못함을 말하고,

이런 의식의 기도와 시도는 결국 항상

실패하면서도 끊임없이 욕망해야 하는

것이 인간존재의 숙명임을 담아내고 있다.



신창운의 숯은 과거 불순의 불순을 버리고

숯으로서 순수 이력의 역사를 담은 응축의

흔적이고, 언제든 다시 마지막 4악장의

피날레를 연주할 열정의 덩어리이며,

검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은 부정변증의

상징의 표상이다.















뜨겁고 차가웠던 광주의 오월은 오월의 불덩어리와 오월의 소멸이 녹아든 동시성이며 승리이자 패배이며, 불과 재를 통해 부활의 꿈을 담고 있다. 이런 취지에서 탄생과 죽음을 통해 부활하는 꿈을 녹여 예술세계를 추구하는 ‘신창운’ 작가의 작업세계를 이번 미술기행으로 삼았다. 그리고 작품의 세계가 작가의 여러 이력에 의해 가려지는 것이 우려되어 작가의 작품론에 대해서만 기행한다.

몇 년 전에 한 전시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보이는 대형 회화 ‘욕망’이라는 명제 작품에 주목하였다. 하나의 태양을 모사함과 동시에 디자인적, 민화적, 신화적으로 표현한 독특한 양식의 그림으로 흥미를 끌었다. 더불어 지난해 은암미술관에서 ‘흔적으로서 숯’ 작업의 작품을 통해, 이전의 작품이자 탄생적 의미인 태양의 이글거림에서 소멸의 재로 가는 숯 작업의 작품이 순환의 고리로 연결되는 시간적 연대 작업이 되었다.

신창운이 인도 유학 후 작업한 ‘욕망’ 시리즈 작품은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가장 강렬한 자연의 에너지 분출인 태양 같은 항성과 그 속에 이글거리는 이미지를 차용하였다. 이 이미지는 항성 안에 화려한 색조와 선명한 그라데이션 기법을 사용하여 한덩어리의 이글거림이 아닌 뚜렷하고 가시적인 선명한 패턴의 반복으로 강렬하게 욕망의 본질을 표현한다. 무한의 에너지 공간에서 분출되어 끝없는 경쟁에 의해 욕망화된 욕망들이 소멸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작가는 덫의 프레임에 걸려 꿈틀거림의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갇혀 환유와 치환의 연속으로 떠돌고 부유하는 욕망 덩어리들을 표현한다. 이런 맥락에서 욕망에 대해 작가는 “결코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 이러한 욕망은 마치 우리가 죽지 않은 다음에야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신들이 살법한 초현실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말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접하는 세계는 순수하게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심과 욕망에 의해 물들어 있는 주관적 경험적 선택을 통해 구별과 차이를 만들어 그 안에 산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은 안이 텅 빈 무의 상태인 결핍의 존재로서 끝없는 뭔가를 채워 넣고자 늘 욕망으로서 존재한다. 작가는 이글거리는 욕망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존재 근거를 대신하는 어느 것으로도 하지는 못함을 말하고, 이런 의식의 기도와 시도는 결국 항상 실패하면서도 끊임없이 욕망해야 하는 것이 인간존재의 숙명임을 담아내고 있다.

신창운의 ‘욕망’ 이미지에서 불덩어리 속에 차가운 이미지들이 숨어 있고 불덩어리를 가둔 프레임 밖의 차가운 우주 공간에는 반대로 작은 불덩어리들이 부유하고 있다. 즉, 뜨거움 속에서 차가움 있고 차가움 속에서 뜨거움이, 탄생 속에 소멸이 있고, 소멸 속에 탄생이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부정적인 것을 긍정하지 않고 부정을 통해서 지금껏 배제된 세계를 나타내되 되살리는 것이다. 더불어 배척되고 감금된 가치의 시선으로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부정의 변증이며 불덩어리는 불덩어리 방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차가움으로 이해하고, 그 역의 논리도 같을 맥락일 때만이 부정적인 것이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변증법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들 안에서 숨어 있는 긍정적인 것을 찾아야 하며, 동시에 긍정하는 것들 안에서 숨겨진 부정적인 것을 찾도록 해야 한다. 작가의 ‘욕망’ 작품은 소재인 밝은 태양 속에서 어두움과 흑점을, 어두운 우주에서 빛나는 작은 항성의 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부정변증만이 세상과 소통하고 통찰하는 대동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이미 작가 신창운은 대학시절 사회저항 동아리 활동과 자기보전을 위한 이념을 도구화한 국가폭력에 대한 피해의 가족사에서 알았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와 다른 남인 타자성을 유폐하는 계량주의와 폭력적이고 고통스런 현실을 은폐하는 긍정주의에 저항의 통찰만이 소통할 수 없는 것을 소통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신창운의 ‘욕망’은 곧 소통의 길을 찾도록 하는 통찰의 이미지이다. 그래서 부정적인 것은 부정을 통해 완전히 소멸되고 사라질 때까지 이어져야 하고, 이런 끝없는 부정의 과정만이 욕망의 고통의 뿌리를 제거할 수 있다.

신창운의 ‘흔적의 삽’은 쓸모없이 보이는 시꺼먼 삽의 형상을 한 조형 조각이다. 갈라진 고통의 골, 수많은 기공의 구멍과 흔적으로서 삽의 표상은 방금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처럼 보인다. 이 흔적의 삽은 우리에게 이력을 찾아 응답해야 할 의무를 갖게 만든다. 이 흔적의 삽은 산화된 재가 아닌 탄화된 숯을 통해 지나간 삽의 이미지와 최후의 불덩어리가 되는 미래를 의식하고 있는 현존재의 주체로 남는다. 신창운의 ‘흔적의 삽’은 이미 끝나서 즉자(卽自)가 된 과거와 대자(對自) 그 자체인 현재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으로서의 미래라는 시간의 역사를 의식적으로 품고 있다. 그래서 탄화된 숯은 불로 재발화하여 살아나기 때문에, 숯이 품고 있는 대상을 의식하는 것은 암암리에 그 대상이 아닌 다른 잠재의 불덩어리로서의 자기를 의식하여 자기에 대해서 존재하는 대자존재(對自存在)를 형성한다.

한편 ‘신창운의 삽’은 대지 위에 최초의 문명을 만들었던 가장 원초적 노동의 상징성과 인류의 노동 가치를 되묻고 있다. 역사 발전에 따라 노동에 쓰이는 도구의 발달은 노동과 대상을 매개하는 역할에 충실하고 균형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역할을 넘어 오늘날에는 그 자체가 독립된 힘으로 인간을 속박하고 폭력을 통해 노동가치를 하향화 하고 있다. 신창운의 ‘흔적으로서 삽’은 오늘날 이런 노동을 수단화, 단순화, 파편화, 추상화시키는 편중된 노동가치의 죽음의 선포이며 이전의 노동가치의 부활을 상기한다.

삽은 인류의 문명을 이루는 노동의 가치를 상징하고, 한편 노동의 도구로서 존재하면서 인류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의식적이며 사물적 관계로서 존재이다. 즉 이 유물적 흔적의 삽은 인간이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물적 존재이며, 살아가면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고 발화했던 흔적에 응답하고 인식하는 역사적 존재이다.

신창운의 ‘흔적으로서 삽’은 노동가치와 희로애락의 열정으로 불을 태우며 최후의 죽음의 재가 되는 소멸의 사라짐을 거부했다. 그래서 그의 ‘숯삽’은 사라짐의 재가 아닌 마지막 4막의 무대를 위해 장열하게 소멸될 불덩어리로 내재시켰다. 그리고 ‘숯삽’은 검은 숯 속에서 어둠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불덩어리의 밝음 찾도록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래서 신창운의 작품 ‘이글거리는 욕망’과 ‘흔적으로서 삽’은 밝음 속에 어둠을 찾고, 어둠 속에서 밝음을 찾는 부정의 변증과 통한다. 그래서 태양 속에서 흑점을, 욕망 속에서 자기의식을, 검은 숯 속에서 불덩어리를, 사라짐 속에서 존재를 보아야 만이 신창운 작업을 이해하는 길이다.

순환과정에서 숯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는 이전의 단단함의 이력과 불덩어리에서 소멸의 재가 되는 산화를 막아주는 산소의 차단에 있다. 그래서 신창운의 숯은 과거 불순의 불순을 버리고 숯으로서 순수 이력의 역사를 담은 응축의 흔적이고, 언제든 다시 마지막 4악장의 피날레를 연주할 열정의 덩어리이며, 검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은 부정변증의 상징의 표상이다.

또한 이 숯은 자신의 있음을 의식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으며 아무런 거리도 지니지 않는 ‘즉자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벗어날 수 있고 ‘나 밖에서 나를 인식하는 대자(對自)’인 것이다. 사르트르는 ‘초월’의 의미를 매 순간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리고 “초월을 통해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찾음을 말한다. 따라서 신창운의 숯은 이력의 역사와 미래의 잠재된 불덩어리로서 대자이며 초월이며 자유이다.

신창운 숯은 재의 공(空)으로 가기 직전에 있음(有)의 기억과 기대에 대한 없음을 보여 주는 무(無)이다. 숯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기억과 기대에 대해 아직 채워지지 않았거나 덜고 덜어 없음의 무(無)를 의미한다. 즉 무(無)는 공허한 비어 있음이 아니라 무소유, 무개념, 무의미 등처럼 아직 채워지지 않았거나 덜고 덜었지만 기억과 기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또한 ‘숯삽’은 유기체의 생명처럼 노동의 도구에서 쓸모없음으로 사라져간 흔적의 산물이다. 모든 욕망은 층층이 겹겹이 쌓인 소멸의 사라짐 위에 싹튼 존재이며, 시간 존재의 끝이 사라짐이며, 사라짐의 소멸은 현재성의 단절이다.

인간은 기억과 기대에 대한 수많은 중첩으로 고통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기억과 기대의 중첩을 박차고 현재성을 찾는 것이 현재의 초인이며 인간의 인간이 되는 길이다. 세상의 탄생과 소멸은 자연법칙이며, 반드시 사라져야만 하는 필연의 소멸도 사라지지 않는 연혼불멸도 법칙위반의 저주이다.

신창운의 ‘욕망과 숯’처럼 사라지는 소멸의 의미를 통해 지속적인 정화가 필요한 존재들이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소멸을 완전히 준비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는 수행을 요구한다. 소멸과 영혼의 상실은 생명의 에너지가 단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살아있지만 관계의 단절 또한 소멸의 죽음이며, 사라져 죽었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의식의 관계를 잇고 있는 것은 지금도 갈이 있는 것이다.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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