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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종 고고학산책
2019. 06.13(목) 11:04확대축소
신창동유적 출토 칠기칼집(국립광주박물관)
조현종 고고학산책

-한국 칠기의 메카, 광주 신창동유적

2천년전 생활유물과 특이한 칠기 자료 최초 출토



검은 칠이 덕지덕지 붙거나 묻어있는

이 자료들은 칠기제작과정과 그 수준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들이다.

말하자면, 신창동유적에서 직접 칠을

채취하고 정제하였으며, 칠기를 제작했음을

알 수 있는 증명서인 셈이다. 신창동유적을

감도는 극락강의 이름이 칠천(漆川)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우리나라 칠의 메카로

탄생한 순간이었다.



독일 서부의 강변도시 뮌스터는 양질의 치즈도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은 1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주교도시로 유명하다. 1999년 이곳을 처음 방문하였을 때는 13세기 독일고딕 건축물의 상징인 뮌스터대성당의 초록색 지붕과 람베르츠교회 외관에 높이 매달린 장방형의 쇠창살 케이지가 인상적이었다. 이것 말고도 뮌스터에는 바로크 정원의 궁과 교회를 비롯해서 훌륭한 성당과 광장, 아름다운 주택, 그리고 유서 깊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어 도심은 가는 길마다 매력적이다. 그 가운데는 서구유일의 칠공예박물관(Museum fur Lackkunst)도 있다.

근대서구가 다투어 수집한 동양의 물산은 도자기와 칠공예품이 압도적이다. 장식적이면서도 실용이 가미된 동양의 자기와 칠기는 곧 서구인에게 부와 교양의 정도를 가늠하는 것이었다. 막대한 수입으로 자본의 유출이 심화되자 유럽은 동양의 기술을 입수하여 자체 생산을 시도하였고, 그 결과 세계적인 수준의 도자요업으로 발전시켰다. 오늘날 네덜란드의 델프트 청화와 독일의 마이센자기가 그러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자생의 옻나무가 생육되지 않는 유럽에서 옻칠공예는 불가능하였다.

옻칠은 옻나무에 상처를 내서 나오는 수액이다. 칠기는 옻나무의 수액을 정제하여 토기나 금속, 목기, 종이나 천과 같은 재질의 기물에 바른 것을 지칭한다. 칠그릇 출현 이전에는 접착체로도 사용되었다. 2012년 11월 사이언스는 이미 50만년 전 인류가 석창과 손잡이를 결합하는데 나무의 수액이 접착제로 사용되었음을 보고한 바 있다. 접착제, 예컨대 수액을 용기에 넣고 불로 경화시켜 점성이 강화된 타르와 같은 용액을 얻기에 용이한 수종에는 자작나무나 소나무, 옻나무 등이 있다. 석유산지에서는 점성이 탁월한 천연 아스팔트-피치가 선사시대부터 접착제로 폭넓게 사용되었다.

옻나무는 아시아 전역에서 자생하고 있지만, 수액의 성분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대체로 중국과 한국, 일본의 동북아계와 타이완과 베트남, 그리고 태국과 미안마 등 2종류의 동남아계로 구분된다. 칠기는 세계적으로 동북아지역이 가장 빠르다. 일본의 홋카이도 카키노섬 B유적에서 출토된 적색칠제품이 약 9,000년 전, 그리고 중국의 절강성 하모도(河姆渡)유적에서 출토된 목칠그릇은 약 7000년 전으로 편년되고 있다. 칠나무가 유입된 일본에서 출현 초기에 이미 수준 높은 칠제품 생산기술이 나타나는 점은 주목된다.

우리나라의 칠은 아직까지 기원전 700년경의 자료가 가장 빠르다. 전라남도 여천시 적량동의 한 지석묘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의 칼집분석에서 찾아진 칠흔적이 그것이다. 이어 충청남도 예산 동서리유적(BC 4세기경), 전남 함평 초포리유적(BC 2세기경)의 칠흔적이 있다. 그러다가 1989년 경상남도 창원 다호리유적의 1호묘에서는 칠기 고배와 상자, 부채, 붓, 칼집 등과 함께 괭이와 같은 농공구에 이르는 다양한 칠자료가 출토되었다. 물론 이 때는 북쪽의 낙랑을 통해서 중국의 칠문화와 그 기술이 유입되는 추세에 있었다.

한편, 1997년 5월 12일, 국립광주박물관은 광주광역시 광산구소재 국가사적 375호, 제3차 신창동유적의 저습지조사결과를 시민들에게 보고하였다. 그날 현장의 시민들은 신창동의 특징적인 다양한 용기류와 목제유물, 흑칠제의 칼집과 칼자루장식등의 검 부속구, 절구대, 괭이, 낫자루, 삼테기, 싸리비, 도끼와 자귀자루 등과, 토제방울, 토기고배 등 다양한 토기류, 그리고 칠기고배, 통형칠기, 도칠토기 등 2천년 전의 믿기지 않는 생활유물에 감동하였다. 시민을 위한 유적공개가 흔지 않던 시절, 언론은 날마다 대서특필하였고, 초대받은 시민들의 기쁨은 배가되었다.

그런데, 이날 공개한 수많은 유물가운데는 아주 특이한 유물이 있었다. 옻나무 수액인 칠을 담는 칠통과 칠을 조금씩 덜어 내어 사용하는 이른바 팔레트, 칠을 바르고 문질러 광택을 내기위한 헝겊조각이 붙은 토기바닥이 그것이다. 검은 칠이 덕지덕지 붙거나 묻어있는 이 자료들은 최초로 출토된 동시에 칠기제작과정과 그 수준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들이다. 말하자면, 신창동유적에서 직접 칠을 채취하고 정제하였으며, 칠기를 제작했음을 알 수 있는 증명서인 셈이다. 신창동유적을 감도는 극락강의 이름이 칠천(漆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우리나라 칠의 메카로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제 한국칠기의 메카인 광주신창동유적의 칠기는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몇해 전 칠기명장 최석현선생과 신창동출토 통형칠기의 복원작업을 하는 동안, 2000년의 공간을 넘어 명장의 손을 통해서 탄생한 칠기를 두고 본격적인 칠기연구소를 희망하게 되었다. 이제는 연구자를 양성하고 과거의 생산기술을 복원해야 한다. 옻나무도 자라지 않고, 옻공예도 없는 독일의 뮌스터가 올칠공예관을 세우고 연구하는 일은 무엇인가? 뮌스터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는 것은 문화에 대한 바른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1.

신창동유적 출토 칠용기(1997년 필자사진)



































사진 2. 신창동유적 출토 칠기 오절판(국립광주박물관)







신창동유적 출토 칠기 오절판(국립광주박물관)




















사진 3 신창동유적 출토 칠기칼집(국립광주박물관)

신창동유적 출토 칠용기(1997년 필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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