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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철학자이자 가수로 평생을 살다간 전설
2019. 07.07(일) 08:48확대축소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가수로 평생을 살다간 전설



레너드 코헨











“당신이 연인을 원한다면/나는 당신을 위해 어떤 일이던 할게요/당신이 다른 종류의 사랑을 원한다면/당신을 위해 가면이라도 쓰겠습니다/당신이 반려자를 원한다면 내 손을 잡아요…내가 바로 당신의 남자니까요”

(레너드 코헨의 아임 유어 맨(I’m your man)중)



이런 사랑이 세상에 있을까? 세상에 존재 할 것 같지 않은 사랑을 노래했던 레너드 코헨.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목소리가 있을까? 중학교 때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테이크 디스 월츠(Take this walts)’의 잔잔한 곡에 저음으로 낮게 깔리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는 목이 콱 메여왔다. 그의 음악은 중학생이었던 나에겐 아름다운 시 그 자체였다. 그렇게 그는 나의 인생으로 들어왔다.

2016년 11월 레너드 코헨은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의 마지막 앨범 ‘유 원 잇 다커(You want it darker)’를 발표하고 19일 후다. 앨범 발표 후 레너드 코헨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준비하고 있고 자신은 준비되었다는 지난 인터뷰를 반박하면서 “나는 지나치게 나 자신에게 빠져들곤 합니다. 난 영원히 살 생각이에요. 아마 120살까지는 음악을 할 수 있겠어요”

마지막 앨범을 코헨은2년 동안 준비했다. 아들 아담이 프로듀서다. 집을 임시 스튜디오로 꾸몄다. 몸 놀림이 불편했던 코헨을 고려해 그가 보조 의자에 몸을 의지 할 수 있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했으며 때론 의료용 대마초의 힘을 빌기도 했다. 모든 곡의 프로듀싱에 있어서도 활발하게 그의 의견을 피력했고 마지막 선택은 코헨이 직접 하였다.

문득 그의 음악이 듣고 싶었다. 나는 ‘유 원 잇 다커’ 앨범에 수록된 ‘트리티(Treaty)’라는 곡이 너무나 좋았다. 음악을 듣고 소름이 돋아 보기도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담담하고 조용했지만 무언가 힘이 있는 그의 목소리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다. 방송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 앨범이 그가 죽어가면서 완성한 마지막 앨범이었다는 것을……



레너드 코헨은 가수, 시인, 철학자로 알려져있다. 1934년 9월 21일 캐나다 몬트리올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큰 사업가였으며 어머니는 탈무드 학자와 랍비의 딸이었으며 간호사였다. 아버지는 코헨 9살에 사망했지만 충분한 재산을 남겼다. 어린 시절의 코헨은 무척 종교적인 아이였다.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힘들어했다. 레너드 코헨이 처음 글을 쓰게 된 것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때문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시인의 경력을 쌓게 된다. 1956년, 재학 중에 첫 시집 ‘렛 어스 컴페어 미쏠로지스(Let us compare mythology)’를 출판한다. 1961년 시집 ‘더 스파이스 박스 오브 얼쓰(The spice box of earth)’가 큰 사랑을 받으면서 캐나다에서 시인으로 크게 유명해진다.

1967년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코헨의 노래 수잔을 주디 콜린스가 부르면서 크게 히트하게 된다. 1968년 그의 첫 데뷔 앨범 ‘송쓰 오브 레너드 코헨(Songs of Leonard Cohen)’을 발표하는데 상업적 성공은 못했지만 작곡, 작사가로써의 레너드 코헨의 입지를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주디 콜린스는 그녀의 자서전 레너드 코헨은 대중에 나서서 노래 부르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코헨은 어려서는 유대교 속에서 자랐지만 1970년대에 선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94년 무렵, 코헨은 그의 모든 음악적 활동을 접고 수도원으로 들어가 5년간 선불교 승려로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2001년 ‘열 개의 새 곡들’이라는 앨범을 발매한다. 그리고 그 다음해 ‘디어 헤더’라는 곡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는다.

2005년에는 레너드 코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의 전 매니저 켈리 린치를 고소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의 은퇴자산이었던 우리 돈 육십억 정도를 착복하고 겨우 이억 정도 남았고 엄청난 세금이 밀려 있었다. 세금을 정산하려면 집에서 나가야 되는 상황까지 되었다. 다음해에 린치는 레너드 코헨에게 백억을 갚으라는 법원판결이 났지만 회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2013년까지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전 세계 투어에 나서는데 공연이 387회 였다고 한다.



투어를 통해 경제적인 모든 어려움들을 음악과 함께 없애 나갈 수 있었다. 2009년까지 벌어들인 수익이 120억 정도 되었다. 이 수많은 공연을 하면서 무릎에 엄청난 부담이 되었고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게 된다. 하지만 2012년 ‘오래된 생각들’이라는 그의 최초 시디 앨범을 발표하면서 칠 년간의 공연 투어와는 또 다른 마라톤 같은 투어를 계획했다. 이 앨범은 영국 2위, 빌보드 차트에3위를 기록했는데 대략 16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굉장히 빨리 다음 앨범 “유명한 문제들”을 2014년에 발표하고 31개국 아이튠즈 차트 1위를 기록하고 10개국 앨범 차트 일위를 하는 등 큰 히트를 치게 된다.

거의 오십 년 동안이나 음악활동을 하면서 레너드 코헨은 그 자신이 팝스타가 되기를 원치는 않았다. 아주 심오한 초 저음 바리톤으로 노래를 불렀고 아주 심플한 코드와 기타소리만으로 반주 삼았다. 코헨은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썼지만 그 한 곡 한 곡 쓸 때마다 절대로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세련되고 매우 훌륭하지만 또 간결했으며 사랑을 위해 기꺼이 헌신함 속에서 오는 어떤 사색, 믿음, 절망, 저항, 고독, 관계, 전쟁, 정치에 대한 주제를 돌려 말하듯이 풀어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아름다운 노랫말은 사람들로부터 무척 칭송 받았고 그의 팬들은 그에게 노벨상을 주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이기 까지 했다. 2000곡이 넘는 그의 노래들을 녹음했고 주디 콜린스나 팀 하딘 같은 포크 가수들이 초기에 크게 히트를 쳤으며 유투, 아레사 프랭클린, R.E.M 이나 체프 벅클리, 트리샤 이어우드, 엘튼 존 등이 그의 노래를 불렀다. 레너드 코헨의 가장 유명한 노래 ‘할렐루야’는 위엄 있으면서도 사색적인 발라드다. 1984년에 쓰여진 이 곡은 상업적이지 않다고발표가 거절되었던 곡이다. 십 년 후 제프 벅클리에 의해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밥 딜런이나 저스틴 팀버레이크까지 300번이 넘게 리메이크 되었다.

레너드 코헨은 지금까지의 수많은 업적을 인정받아 200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2010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고 2010년 그래미 평생 공로상과 2011년 스페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스투리아스 왕세자상과 퀘백 국가 훈장 등등이 수여됐다.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받을 때 이렇게 수상 소감을 밝혔다. “우리는 결승선이 어디라고 정해놓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 중에 더러 어떤 사람들은 이미 그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사는 동안 한번도 그래미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 이 얼마나 겸손한 수상 소감인가.

그의 음악을 어릴 때 알 게 되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엄마가 된 지금 아들에게 그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오늘은 오후 내내 그저 멍하니 그의 노래를 듣고 싶은 날이다. 그의 순수함과 사랑에 브라보를 보내며.



김세경 아트디렉터 okkim@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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