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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교수와 시암송
2019. 07.17(수) 07:43확대축소
김동길 교수와 시암송



김동길 교수는 정치적 발언이 강해서인지 그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가 크게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독설(毒舌)이 담긴 강연보다는 인생을 논하거나 시를 읊는 모습을 더 좋아합니다.

많은 분들처럼 나도 대학시절부터 그분의 책을 많이 읽었고, 강연이 있다고 하면 찾아가서 즐겁게 듣곤 했습니다. 그는 이어령 교수와 함께 말과 글이 동시에 뛰어난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글에 대해선 김동길 교수가 연희대학 재학 중일 때 연세춘추에 기고한 글을 보고 그의 절친 김찬국 교수가 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김 형, 글 잘 썼어. 김 형 글은 살아있단 말야!” 김 교수의 평처럼 그의 글은 평이하면서도 생동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는 정의감이 강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유신헌법이 발표되고 대부분의 교수들과 언론인들이 침묵할 때 “유신헌법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용기 있는 발언을 하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저항정신은 그가 즐겨 읊는 시조,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와 성삼문의 절명시(絶命詩)에서 잘 나타납니다.

나이 들어서는 목은 이색의 시조로 자신의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이 시조에 나오는 한 구절 ‘석양에 홀로 서서’는 그의 산문집 제목이 되기도 했지요.

요즈음 개인 유튜브 방송을 하는 92세 김 교수가 ‘내가 부를 마지막 노래’라는 주제로 얘기하면서 인생의 황혼을 맞아 마음에 떠오르는 시 몇 수를 암송했습니다. 시를 읊는 그의 노안(老顔)에 번지는 미소가 보기 좋았습니다.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온 그는 두고온 북녘땅 고향을 그리며 소월의 스승 김억의 ‘내 고향’을 읊었습니다. “내 고향은 곽산의 황포가외다/ 봄노래 실은 배엔 물결이 높고/ 뒷산이라 접동꽃 따며 놀았소/ 그러던 걸 지금은 모두 꿈이요.”

그는 좋아하는 영시 두 편을 원문으로, 우리말로 암송했습니다. 한 편은 잘 알려진 워즈워스의 ‘무지개’이고, 다른 한 편은 월터 새비지 랜더의 ‘그의 75회 생일에’입니다. 두번 째 시를 적어봅니다.

“나는 그 누구와도 다투지 않았네/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가 없었기에/ 나는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 다음으론 예술을 사랑했네/ 나는 삶의 모닥불 앞에서 두 손을 쬐었지/ 이제 그 불길 사그러드니/ 나 떠날 준비 되었노라.”

가슴에 시 300여 수 품고 살아온 김 교수의 남은 날들이 아름다운 저녁노을처럼 시로 물들어 낭만을 잃고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참된 멋을 알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권갑하 님의 ‘인사동’입니다. 정겨운 인사동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사동



권갑하( 1958 ~ )



오래/ 걸어온 것들은

모가/ 닳아 있다



이윽한/ 눈빛

연잎 같은 마음



안으로/ 향기가 스며

단단하고/ 은은하다 hj@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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