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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잔인함과 감수성
2019. 07.17(수) 07:44확대축소
영화 ‘밀양’ 포스터
인문지행-정의석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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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일보 7월5일자 사용



인간의 잔인함과 감수성



정의석 소장



인간의 폭력성을 다룬 영화 중 하나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처럼 살인과 파괴가 난무하는 것이다. 반면에 ‘밀양’이나 ‘시’처럼 잔잔하지만 인간의 폭력성을 잘 드러낸 것도 있다. 전자는 내가 아닌 가상적 인물들의 폭력을 다룸으로서 나의 무의식에 갇힌 폭력성을 승화한다. 후자는 나와 유사한 현실적 인물들의 감수성 부족이 가져오는 폭력적 상황을 보여줌으로서 관객의 자기반성을 유발한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폭력성을 유발하는 원인을 분석한 일종의 보고서이며, 치료적 매뉴얼이다. 서술방식의 유사성을 보이는 이창동 감독의 두 편의 영화를 비교하면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폭력성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자.

첫 번째 영화는 ‘밀양’이다. 이 작품은 2007년 작품으로 12년 전의 작품이다.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가 원작이다. 이창동 감독은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성을 언급하였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에 사람들은 세월호 유가족과 연관성을 연상하기도 한다.

서울에서 남편을 잃은 이신애(전도연 분)는 남편의 고향 밀양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아들을 키운다. 어느 날 아들이 실종되고 되돌아 올 것이라 믿었던 아들은 유괴범에 의해 죽는다.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은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현실에 잘 적응한다. 교회를 다니며 자신의 고통이 하느님을 통해서 치유되고 구원되었다고 간증한다. 그런 그녀의 현실적응이 관객에게는 안심이 아니라 위태로움을 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신앙의 완성을 위해 아들의 살인자를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에 면회를 간다. 그녀는 범인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용서하겠다고 한다. 범인은 매우 평안한 얼굴로 자신은 범죄 이후에 신앙을 통해서 죄의 사함을 받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노라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범인의 평안한 얼굴과 죄의 사함, 신앙고백을 듣고 당황한다. 그 당황스러움은 그녀의 기대가 무엇이었으며, 그 기대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가해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피해자인 자기 자신에게 직접적인 사과를 기대했던 것이다. 즉, 그녀의 용서는 무조건적 용서라기보다는 가해자의 진심어린 반성과 고통을 전제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직접 하늘에 계신 그분에게 사과를 하고, 피해자는 용서하지 않았지만 하늘에 계신 그분의 용서를 받아 버린다. 그녀는 자신이 용서가 아니라 분노했어야 함을 그때야 깨닫는다. 그래서 이후부터 교회에 가서 패악을 부리며,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느님이 용서할 수 있냐고 항변한다.

이 영화는 1차적 범죄가 가진 우연적 폭력성보다, 인간의 감수성 부족이 가져오는 2차적 폭력성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폭력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아들의 유괴범이자 살인자가 피해자인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었다면, 아들 잃은 어머니의 분노와 허무함, 비탄을 어렴풋하게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면 자신이 용서받았다는 말은 감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임을 고백했어야 한다. 살인자가 어머니에게 저지른 폭력은 이기성에서 나오는 것이며, 다른 표현으로 보면 감수성의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폭력이지만 가장 강력하며, 무도한 폭력인 것이다.

세월호 이후에 국가와 일베 등이 저지른 수많은 말과 행동은 영화 ‘밀양’에서 살인자의 그것과 같다. 어찌 보면 박근혜씨는 밀양의 주인공과 유사하게 탄핵이 되어 구치소에 가기 이전에도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했고, 지금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만원씨가 광주민주화 운동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주장도 정치적 주장에 앞서 감수성의 부족이 가져오는 폭력이다. 최근 민경욱, 차명진 등 한국당 국회의원들이 하는 말은 언어로서 가치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그들의 언어를 자랑스럽다는 듯이 사용하고 있지만, 그 말이 가지는 폭력성은 한계를 가늠하기 어렵다. 김훈 작가가 안동하회마을에서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 너무 없고, 남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너무 없다”며 사회적 비판을 했다고 한다. 그의 말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닿아 있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주인공 이신애의 곁에서 그녀를 보살피며 안타까운 시선으로 따라다니는 종찬(송강호 분)은 피해자에 대한 감독 자신의 시선이다. 그녀의 슬픔을 공감하고, 더 상처받을까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는 훈계도 참은 채 조용히 그녀의 슬픔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감독의 심성을 대변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창동 감독은 우리에게 상처받은 사람을 자신처럼 지켜보고 기다려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이고, 치유임을 전달하고 싶은 것 같다. 현대사회의 폭력은 이기성과 감수성 부족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두 번째 영화 ‘시’도 ‘밀양’과 유사한 주제를 보인다. 제목이 ‘시’라는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김용택 시인이 언급하듯이 이 세상이 더 이상 시를 쓰고, 감상할 수 없는 감수성이 무딘 사회가 되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까지 감수성의 회복을 희망하는 김용택 시인이 등장하고, 감수성의 소멸을 주장하는 김용택 시인의 후배가 등장하고, 감수성으로 포장해서 음담패설을 내뱉는 동호회 회원이 등장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축소해놓은 듯하다.

영화 ‘시’에서 차이점은 가해자인 손자를 손자의 할머니 양미자(윤정희 분)가 직접 벌을 받게 한다는 점이다. 할머니 양미자는 손자의 성폭력으로 인해 죽은 어떤 여고생의 자살에 공동의 책임감을 느끼며, 죄스러워한다. 그렇지만 매일 손자에게 식사를 챙겨주며 할머니가 가장 행복할 때는 손자의 입에 밥이 들어갈 때라고 말하며 억지로라도 밥을 먹인다. 그녀는 손자에 대한 분노가 아닌 안타까움을 지닌 채 벌을 받게 하고, 손자가 자신의 죄를 씻을 기회를 준다. 물론 그녀는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도덕적 책무를 다한다. 영화 ‘밀양’이 감수성의 부족이 가져오는 폭력을 다루는 것에 그쳤다면 영화 ‘시’는 그 폭력을 어떻게 멈추고 치유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실천을 담고 있다. 타인의 입장과 감정이 되어 보는 것 그것이 도덕이며, 치유이며, 사회이다.



영화 ‘밀양’의 한 장면1
영화 ‘시’ 포스터
영화 ‘시’ 포스터
영화 ‘시’ 한 장면
영화 ‘밀양’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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