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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안팎의 생각들 시대를 넘나드는 철학적 사유 제공”
2019. 07.31(수) 17:45확대축소
조영석 감사실장과 필자
“숲 안팎의 생각들 시대를 넘나드는 철학적 사유 제공”







다름(異)을 아는(智)것

그냥 걸어보면 알 수 있다

지리산 둘레길은

한없는 철학적 사유를

하게 만드는 곳.



홍시를 보면서 까치밥을 생각하고

곧 있으면 내릴 눈에

날짐승 먹거리를 묻는다

질문이 저절로 살아난다

사유가 깊어지고 맑아진다







지리산이라는 대자연이 주는 숨결을 지역민과 공유하고 싶어 걷기를 자처하고 나섰다. ‘지리산 둘레길’의 저자 조영석 한국광기술원 감사실장은 도시를 벗어나 잠시 나와 이웃을 찾는 시간을 가져보라 권한다.
지리산 둘레길 책 펴낸 조영석 한국광기술원 감사실장



지리산(智異山), 남도인들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멀리 조선 창건설화에서 동학농민혁명,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꿈과 수난의 역사를 말없이 품어온 산이다. 이 유서 깊고 아름다운 산을 두발로 뚜벅뚜벅 걸어 지역민과, 대중과 그 숨결을 나누려는 이가 있다. 조영석 한국광기술원 감사실장이 걸어서 만난 지리산 둘레길을 공유하는 기행에세이집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둘레길’을 내놨다. 조 감사실장을 만나 둘레길과 걷기에 어린 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숲 밖에서의 생각과 숲 안에서 생각이 다르다. 자연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며 나를 정화하고 치유하고, 맑게 한다. 삶에 대한 여러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홍시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까치밥을 생각하고, 곧 있으면 눈이 내릴 텐데 날짐승들은 배고프겠구나 자문자답 하는 등 질문이 저절로 살아난다. 사유가 깊어지고 맑아진다.”

“어리석은 사람도 이 산에 들어서면 현명해진다고 해서 지리산이라고 하잖아요. 다름(다를 이 異)을 아는(알 지 智)것, 그냥 걸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리산 둘레길은 한없는 철학적 사유를 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조영석 감사실장은 ‘우선 지리산을 만나보라’ 권한다.

‘지리산 둘레길’은 우연히 얻어졌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또 걸어 그 감흥과 산의 유려함, 산에 얽힌 깊고 깊은 사연을 지역민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본보 ‘조영석의 지리산 둘레길’이 1년여의 대장정을 마쳤고 글을 기다린 이들의 요청으로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찔레꽃, 섬진강 운무가 전하는 사유

지리산은 두 얼굴의 산이다.

무한한 대자연의 얼굴과 한반도의 혼이 서린 역사의 현장, 인간의 얼굴이 공존한다.

이 얼굴 중 어느 하나를 지리산이라 할 수 없다. 그 둘이 함께 어우러져 다른 얼굴을 껴안으며 그렇게 도저한 얼굴을 보여준다.

지리산의 역사와 혼을 찾아 나서더라도 일단 산에 들어서면 그 위용에 압도된다.

광활한 대자연의 그윽함과 아늑함. 그 품 속에서 만나는 여름날의 찔레꽃 한 송이, 가을 감나무에 달랑거리는 몇 개의 감, 여름 장대비 속에 드러나는 섬진강의 끝없는 자태...

이틀 동안 사람 한 명 없는 산속을 걸어보라. 누구라도 자기 내면을 만나게된다. 산은 계절에 상관없이 어둠이 일찍 온다. 산 속에서 깊은 밤 속에서 홀로인 나와 직면한다. 놀라운 것은 그 철저한 혼자임이 전혀 외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 대자연 속을 걷다보면 나를 버리게 된다. 아집·편견·상대에 대한 몰이해.. 소위 까칠하다는 모든 소소한 것들이 일순간 무화된다. 걸으면서 순화된다.”

조 감사실장이 ‘걸어보라’ 권하는 대목이다.

굳이 현명함을 찾을 필요도 없다. 대자연의 품에 안겨 저 풀 한 포기, 바람 한 줌, 햇살 한 자락을 만나면 된다. 어리석은 사람도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지리산(智異山)이라는 이름은 그냥 얻어진게 아니다. 지리(智異), 다름을 아는 것, 차이를 아는 것, 그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다름을 아는 일’이란 보통 일이 아니다.



그곳에도 사람의 온기 가득하고

지리산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이들이 간직한 저마다의 사연은 도회와 비교가 안되는 아득함을 안고 있다.

어린 아이 셋을 키우며 살아가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은 언제나 내일이 걱정이다. 자식을 잃고 어미에게 버림받은 손주들을 거둬 키우고 있다. 우선 끼니는 때우지만 ‘이 늙은이 죽으면 어찌할꼬’. 산의 시름이 깊어간다. 그런가 하면 그곳에서는 개도 사람을 그리워 한다. 정도리 민박집 진돗개는 찾을 때마다 3-4킬로미터 가이드를 자처한다. 아침이면 제가 먼저 길 모퉁이에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안내를 마치고 미련없이 돌아간다. 그리움이 어찌 동물뿐인가. 어떤 때는 지난 여름에 만났던 아카시아가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지나가던 바람이 알은 채를 하기도 한다.



한반도 아프고 아린 역사를 품고

지리산은 그 다름에 대해 철저한 사유를 요구하고 제공한다.

그 아름다운 대자연 에는 한민족의 꿈과 깊은 아픔이 어려있다. 임진년과 정유년에는 일본군과 대치했고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를 대적했던 곳이다. 동학 농민군이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곳이자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이 어린 곳이다.

조 감사실장은 ‘끊임없이 피를 부르는 산. 피를 흘려야했던 현장이요 민초들의 꿈의 땅이자 슬픈 역사를 지닌 산’이라 말한다.

남원 달오름 마을의 피바위 전설은 드문 승자의 전설이다. 고려말 장군 이성계가 단 2천의 관군으로 왜군 2만명을 쳐낸 곳이다. 전쟁 중 날이 저물자 왜구를 물리쳐 백성을 지킬 수 있게 달을 떠올려 달라 간구한다. 이 황산벌 전투로 명성을 얻어 조선건국의 기반을 다졌다고 한다.



아픈역사, 미래는 어찌할까

산을 걸으며 용서 못할 역사를 직면하는 일이 많다. 그 중 함양·산청 주민들이 전해준 양민학살사건은 잊을 수가 없다. 1952년 설 이튿날이었다. 육군 11사단 최덕신이 이끄는 군이 마을 주민을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학살했다. ‘혹시 살아있는 자들은 살려주겠다’며 걸러내 확인사살을 하고 시체를 소각했다고 한다. 알려진데로 최덕신은 박정희 정권시절 외무장관과 독일대사를 지내다 박정희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월북한, 우리나라 최고위 월북자다.

조 감사실장은 “지리산은 심장을 울릴 정도로 파고드는 대자연의 감흥과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의 아픈 민초들의 실상까지. 마음은 요동치고 삶과 인생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며 “놀라운 건 그 모든 감정의 기복과 사유의 끝이 아득한 기쁨과 고요로 귀착된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지리산이 품은 역사의 면면을 직시하는 과정에서 분노와 슬픔으로 몸부림치고 나면 정화된 고요, 알 수 없는 차분한 기쁨, 행복감이 밀려든다는 것이다.

그는 “길 끝에서 느껴지는 평안한 행복은 아이러니한 역설”이라는 말한다. 현장에서 분노나 슬픔을 대면하면 차분해지면서 이 땅과 산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지리산 둘레길 철학적 사유를 하게 만드는 산’이라는 그의 설명과 맞닿는다.

조영석 감사실장은 언론인 출신으로 본보 편집국장과 논설실장, 광주전남기자협회장과 한국기자협회부회장을 역임했다. 광주문화예술진흥위원회 사무국장과 김대중컨벤션센터 본부장으로 근무했다. 조덕진기자 mdeung@srb.co.kr



지리산은

광활한 산자락은 전남과 전북, 경남 등 3개 도에 걸쳐있고 전왕봉 반야봉 노고단 등 3개의 봉우리도 사이좋게 3 지역에 걸쳐있다. 백두대간의 맥이 다시 솟은 곳이라 하여 두류산이라 부르기도 하고 도교의 영향을 받아 방장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해발고도 1,915 m로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높고 한반도 남단 본토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지리산을 대표하는 3대봉 또한 적절함과 형평성을 두루 자랑하듯이 3개 도에 걸쳐있다. 제1봉인 천왕봉(1,916.77 m)이 경남 3개군(산청군·하동군·함양군)에, 제2봉 반야봉(1,733 m)은 전북 남원시에, 제3봉 노고단(1,507 m)은 전남 구례군에 속한다.

okkim@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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