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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행-박해용 상호인정투쟁
2019. 07.31(수) 17:46확대축소
인정 욕구를 가진 우리는 인정받고자 하는 타인의 욕구 역시 인정해야 한다.
상호 인정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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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7월12일자 사용

자신 능력 인정받으려면

타인의 능력도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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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정을 위한 투쟁을 한다

자신만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그것은 상호인정 투쟁이다



상호인정 투쟁은 단순히

자신의 애정, 권리, 가치주장이다

그것은 타자의 애정, 권리, 가치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실현하는 요구이다



상대의 인정을 위한 투쟁은

자신의 인정을 위한 투쟁처럼

소중한 인간 행위이다





#자기보존만을 위한 인정 투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계절이 장마철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물 흐름소리’는 주위로 찾아오지 않는다. 자연의 폭염에 순종하는 듯 주위는 고요한데, 어느 한 곳에서 골목길을 누비는 수박 사라는 외침이 높다. 그 절절한 외침은 하늘을 향하지 않고 담 너머로 간섭하며 힘을 행사한다. 사야만 한다는 듯 소리로 강요한다. 수박장수의 외침은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 우리의 삶이 여름날 한낮보다 더 뜨거운 투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를 인정해줘. 내가 하는 행위를 받아들여줘.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내게 이익을 다오! 이름 하여 이것을 인정 투쟁이라 하자.

역사적으로 보면, 인정 투쟁은 자기보존의 욕구에서 출발한다.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 있는 현상을 유지하려 한다. 삶이 요구하는 조건을 채워가려 하며 더 나은 조건을 만들려는 욕구를 갖는다. 역사 이래로 이러한 욕구는 우리의 몸에 깊숙이 배어있다. 의식하는 존재로서 사람은 동굴 속 생활에서부터 자기를 보존하는 일을 지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해 온 것이다. 먹고 입고 주거하는 것을 찾는 일은 자기를 보존하기 위함에서 시작한 것이다. 자기보존은 사람이 몸을 가졌기에 필요한 욕구이다. 우리는 자신이 몸을 가졌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몸이 원하는 것을 충족해야 하고 이를 위한 일은 반드시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몸이 요구하는 자기보존의 욕구를 개인발전과 사회발전을 위한 기초자산이라 생각하고 추구해 왔다.

이러한 자기보존의 욕구가 만들어낸 삶의 방식은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를 견고히 하는데 공헌했다. 자기이익과 자기중심의 문화는 나와 내 가족 혹은 나의 민족과 나라를 타자와 타자의 가족 혹은 타자의 민족과 나라의 이익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을 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자기이익과 자기중심의 문화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데 있어서 부정적인 면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안주하는 성을 단단히 쌓으면서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과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자기 이익을 위하여 타자를 무시하고 말살하는데 까지 나아갔다. 그래서 삶의 방식을 자기보존의 틀 안에서만 욕구를 충족하려는 인정 투쟁은 한계를 갖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한 자기보존만 하려는 인정 투쟁에서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인정 투쟁 방식은 다양한 영역에서 이뤄진다



사람은 환경의 아들이라 한다. 태어난 조건에 따라서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 사람이라는 말이다. 크게는 태어난 민족이나 국가에 따라서 그 사회의 문화나 교육의 영향을 받는다. 작게는 가족 관계에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어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한 개인의 발육과 성장 과정에서 주로 자신을 양육했던 사람의 영향을 주로 받는다고도 한다. 사람은 자신이 타고난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환경이 사람을 결정한다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다. 사람은 의지를 갖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지를 갖는 사람은 맹목적으로 환경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다. 나름대로 판단하며 더 나은 것을 추구하며 주변의 영향과 조건에 대해서 자신의 힘을 발휘하려고 한다. 여기에 인간의 존재 이유가 있다. 물론 각 개인들은 의지대로 실천할 수 없는 한계들도 가지고 있다. 신체적으로 약하다거나 정신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개인들은 허약해도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개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부족과 고통을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나가는 방식으로 세상을 대해야 한다. 돈키호테식으로 말한다면, 손을 뻗을 수 있는 거리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더 멀리 손을 내뻗으려는 행위를 한다. 제한된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멀리 뛰려고 더 빨리 달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의지의 표현은 각 개인의 수만큼 많은 행위들로 나타난다. 곤궁에 처한 상태와 상황이 다르고 각자의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 표현 역시 서로 다르고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모두가 숨을 쉬지만 각 개인의 호흡 방식과 내용은 다르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은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며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개체의 수만큼 다양한 인정 투쟁 양태를 보여준다. 그래도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인정 투쟁을 일정한 묶음으로 엮어내는 일이 가능하다.



#인정 투쟁의 영역에 따라서 방법은 다양하지만 특성은 여전하다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그의 ‘인정 투쟁’이라는 저서에서 생존 투쟁이 아닌 인정 투쟁을 주장하며, 자신의 인정을 요구하는 인정 투쟁은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가정, 사회나 민족 그리고 인류 사회이다. 가정을 구성하는 요인이 과거에는 매우 단순하게 남녀의 결혼에 의한 혈연중심으로 규정되었다면 오늘날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해당하는 당사자가 나름 가정이라고 주장하는 방식을 허용하자는 방향이 추세이다. 앞으로 색다른 것일지라도 다양한 가정의 존재 방식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정의 특성은 예나 요즘이나 거의 동일하다. ‘애정과 친밀감’이 그 기초에 놓여있다. 가정 안에서 구성원 사이 애정은 특별한 사랑이다. 가족사랑은 구성원 사이에 서로의 마음으로 전달되는 친밀감을 전제로 하는 애정이다. 이 애정은 생겨남과 동시에 세상에서 더 이상 눈을 뜨지 않는 날까지 동등한 감정으로 지속되기를 바라는 근원적 사랑이다. 넘치는 법이 없다.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배려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사랑하려는 애정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사회나 민족의 구성체 안에서 인정 투쟁은 ‘권리와 의무’의 특성으로 결속되어 있다. 사회와 민족의 공동체는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권리와 의무 관계는 사회법의 제한을 받고 그에 의해서 해석된다. 따라서 이 영역에서 인정 투쟁은 권리와 의무를 재정립하고 그 정당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투쟁에 속한다. 따라서 사회적 인정 투쟁의 원천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권리가 무시되거나 멸시받지 않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영역에서 인정 투쟁은 자기 권리 찾기이며 동시에 부당한 법적 질서와 운영에 대한 저항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은 사람의 종(種)을 대변한다. 거칠게 말한다면 한 사람이 인류 전체를 대변할 수도 있다.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문제는 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위를 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류 사회에서 인정 투쟁은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따라서 인간을 새롭게 규정하는 영역에 속한다. 인간 존재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아르헨티나의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는 혁명을 성공시킨 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삶에 만족하지 않고 혁명의 길로 들어선다. 볼리비아의 열악한 해방 혁명의 길로 들어서다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그의 인정 투쟁은 혁명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따라서 의미 있는 인정 투쟁은 ‘상호 인정 투쟁’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은 자기를 보존하려는 욕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오늘날 보존을 위한 투쟁은 단순히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인정해달라는 요구로 한 단계 변화한다. 위에서 다룬 세 가지 영역에서 보는 것처럼 누구나 인정을 위한 투쟁을 하며 산다. 그렇기 때문에 인정 투쟁은 자기만의 이익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상호 인정 투쟁이어야 한다. 상호 인정 투쟁은 단순히 자신의 애정, 권리 그리고 가치를 주장하는 것을 넘어서서 타자의 애정, 권리 그리고 가치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더불어 실현하려는 요구이다. 상대의 인정을 위한 투쟁은 자신의 인정을 위한 투쟁처럼 소중한 인간 행위이다.



다시 말하면 나의 인정 투쟁이 소중한 것처럼 상대의 인정을 위한 투쟁도 소중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만의 이익을 위한 투쟁은 결국 내가 얻고자 하는 결과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내가 원하는 나의 인정을 위하여 상대가 가진 의미 있는 가치를 인정하는 것을 수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정 투쟁은 바로 상호 인정 투쟁이어야 한다. 자신의 욕망과 능력을 인정받기 원하는 사람은 타인의 욕망과 능력에 대한 인정 욕구를 마찬가지로 소중한 욕구로 인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해용은 무안 출신으로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한국연구재단의 연구교수로 의사소통 방식에 관해서 연구했다. 현재, 대화 문화의 이론 연구와 실천을 위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소>를 운영하며, 인문학 공동체 (사)<인문지행>에서 회원들과 함께 인문학 공부를 하고 있다.



무시와 모욕을 거부하는 인정투쟁
악셀 호네트(Axel Honneth 1949~ )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치철학자다.
악셀 호네트(Axel Honneth 1949~ )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치철학자다.
출판사 사월의 책에서 출판한 <인정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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