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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허경의 미술기행
2019. 08.21(수) 17:38확대축소
바르셀로나 피카소미술관
피카소 천재성과 탐구적 예술세계 생생히





“나는 15살 때 이미

벨라스케스처럼 그림을 그렸다.

내가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그로부터 80년이 걸렸다”





피카소는 수많은 스케치와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기법과 형식에 구속되지 않는

새로운 양식에 도달했다

그의 ‘시녀들’은

파헤치고 분석하는

지속적인 연습의 과정을 통해

탄생된 작품이며 동시에

그의 천재적 재능 역시

노력에 의한 결과물임을 방증한다







김허경의 미술기행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20세기 미술사에서 한 화가의 이름을 제외하면 단 한 줄의 글도 써내려갈 수 없을 만큼 큰 획을 그었던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입체주의(Cubism)를 개척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다. 피카소는 아흔 두 살의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80여 년간 끊임없이 3차원의 대상을 여러 시점으로 분해해서 재구성하는 혁신적인 화법을 시도했다.

그가 남긴 5만 여점이 넘는 방대한 작품들은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소장됐다. 피카소미술관으로 명명된 대표적인 지역을 들자면 스페인 남부지방 말라가 미술관과 바르셀로나 미술관, 프랑스 파리 미술관과 앙티브 미술관을 포함한 네 곳이다. 이 곳들은 그의 유명세로 연중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규모 면에서 가장 큰 파리의 미술관은 스페인 출신인 피카소가 파리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자화상’(1914), ‘황소 머리’(1942), ‘한국에서의 학살’(1951) 등 많은 작품들이 기증돼 작품의 특성을 연대순에 따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을 돌다보면 그가 회화뿐 아니라 조각 ·판화·소묘·공예 등 다양한 분야에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음을 알 수 있다.

피카소는 전 생애에 걸쳐 어떻게 상상력과 창의성을 지속적으로 발현할 수 있었을까?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미술관은 피카소의 타고난 천재성과 성장기에 형성된 예술성을 생생하게 증명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세풍의 건물이 즐비한 몬카다(Montcada) 거리를 거닐다 들어선 피카소미술관은 1963년 카탈로니아(Catalonia) 고딕양식의 아길라르 궁전(Aguilar Palace, 15)에 문을 열었다.

1947년 역사적 유산으로 지정된 거리에 미술관이 자리한 탓에 비좁은 골목사이로 미술관 표지판조차 눈에 띄질 않지만 온종일 찾아 드는 관람객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22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상설전시실에는 피카소 작업 형성기에 제작된 회화, 조각, 판화 등 4천251개의 작품들이 펼쳐져 있다. 사진촬영이 금지된 전시장 곳곳은 유년시절 습작부터 이른바 청색시대(1901~1904)로 불리는 청년기의 암울했던 시절과 첫 번째 사랑이 찾아왔던 장밋빛시대(1905~1906), 초기 입체주의까지 작품에 관한 시대적 설명, 주요 전환점을 상세히 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눈 여겨볼 만한 것은 피카소가 20세 이전에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과 75세에 제작한 ‘시녀들’ 연작 전체가 함께 전시된 유일한 미술관이라는 점이다. 2층에 전시된 1950년대 말 피카소가 제작한 ‘시녀들’(1957)은 스페인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추앙받는 17세기 벨라스케스(Velazquez, 1599~1660)의 ‘시녀들’(1656, Las Meninas)을 토대로 재해석한 작품들이다. 3층은 유년시절과 청년기에 제작한 작품들로 정확하고 완벽한 구도, 엄격한 고전주의의 화법을 보면 피카소의 탄탄한 묘사실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1896년 15살에 그린 ‘첫영성체’와 이듬해 그려진 ‘과학과 자비’(1987)는 치밀한 원근법, 인물들의 시선처리, 빛과 그림자의 표현, 사실적인 색채의 완벽한 조화로 인해 그가 천부적으로 타고난 화가임을 인정하게 한다.

그런데 2층과 3층에 전시된 작품의 제작시기와 화법의 현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굳이 정확한 묘사력으로 탁월한 재능을 선보인 성장기 작품들과 예술가로서 완성기에 제작한 ‘시녀들’의 연작을 함께 전시한 배경은 무엇일까?

피카소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다. 1894년 14세에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의 입학시험 과제를 하루 만에 완성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심지어 화가이자 미술교사였던 아버지의 지원으로 입학한 학교마저도 배울 것이 없다며 가질 않고 옛 거장의 그림을 찾아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피카소는 줄곧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 그림을 탐구했다.

바르셀로나를 떠나 1904년 파리에 정착한 피카소는 자신이 유년시절 인정받았던 천재성이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오랜 전통의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품의 내용보다는 공간과 사물을 해체하는데 집중했다.

피카소는 1957년 마침내 자신이 존경했던 벨라스케스를 뛰어넘기 위해 ‘시녀들’을 큐비즘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 내부의 원리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해체하고 분해하여 장난감 구조를 파악해냈던 방식처럼 피카소는 다양한 시점을 근거로 자유로운 형태를 그려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새롭게 재구성된 46점의 ‘시녀들’은 그림 속에 등장한 벨라스케스, 벽의 거울에 비친 펠리페 4세 국왕부부, 마르가리타 공주, 시중을 드는 두 시녀들과 난쟁이, 문 바깥 쪽 계단에 서있는 남자, 대형견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형태와 색채를 이룬다. 피카소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스케치와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자신이 어릴 적 습득했던 사실성과 묘사력을 지워감으로써 작품의 기법과 형식에 구속되지 않는 새로운 양식, 표현방법에 도달했다. 결과적으로 피카소의 ‘시녀들’은 하나의 주제를 모방하는 것으로부터 파헤치고 분석하는 지속적인 연습의 과정을 통해 탄생된 작품이며 동시에 그의 천재적 재능 역시 노력에 의한 결과물임을 방증한다.

이로써 피카소가 자서전에 남긴 “나는 15살 때 이미 벨라스케스처럼 그림을 그렸다. 내가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그로부터 80년이 걸렸다”는 말을 공감하게 된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 예기치 않게 과감하게 잊고, 비워내야 할 상황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열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unlearn’ 즉 배운 모든 것을 잊고 새로운 방법,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백 장의 스케치를 시도하고 또 지우기를 멈추지 않았던 천재화가 피카소의 예술세계를 비추어보면 새로운 길을 향한 출발 지점을 다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카탈로니아어로 표기된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입구.
몬카다거리에 위치한 피카소 미술관
몬카다거리에 위치한 피카소 미술관


hj@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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